오래된 기도
詩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중략...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예수님 앞에 선 한 사람의 기도를 만나게 된다.
1. 열 명의 나병환자가 깨끗함 받음(11-14절)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하시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이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경계를 넘어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나병환자 10명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소리를 높여 외친다. 그들은 차마 예수님 앞에 가까이 올 수 없었다. 멀리 서서 소리를 외친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변방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자들이다. 그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유대인들은 나병환자는 특정한(particular) 죄로 벌을 받은 사람으로 괴로움을 받는(inflicted) 사람으로 추정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께 그들의 나병에 대한 언급(mention) 없는 자비를 요청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치료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부정한 것을 보여야 하는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만 하셨다. 제사장에게 보이러가는 동안, 그들의 나병은 소멸되었다.
_NRSV Harper Study Bible p.1539 누가복음 18장 12절 주석
주님의 그들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왜 아픈지 근원을 캐지도 않고, 자비를 구하는 그들의 음성과 간절함을 주목하여 보사,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하신다.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손을 대시며 깨끗케 되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고, 직접 깨끗함을 선포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신다. 이것은 믿음과 순종의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냥 지날 수도 있고, 의심하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최소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제사장에게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도중에 그들이 깨끗함을 받은 것을 발견 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 주시는 아무런 표정이나 행동을 취하시지 않고 그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에 복종하여 제사장들에게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신앙이다. 구약에서도 나아만이 회개하고 순종한 고로 문둥병이 깨끗하여졌다(왕하 5:1-14). 박윤선 주석, ‘누가복음’
(왕하 5: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아람 왕 군대장관 나아만 장군 그가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를 찾았다. 그가 가진 가장 큰 문제 문둥병을 낫고자 함이었다.
엘리사가 나와서 맞이하지도 않고 사자를 보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하여 깨끗하여 지리라’
나아만이 분노한다.
그가 내게 나와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날이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났다.
그의 종들이 반응이 중요하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 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니이까’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단순한 일들에 순종하기 힘들 때가 있다. 이 작은 일로 무엇이 이루어질까하는 불신 때문일 것이다. 기도가 그러할 수 있다. ‘상황은 다급한데 조용히 앉아서 기도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다. 하지만, 그 작은 순종이 문제해결의 키가 되는 것을 본다.
분노하는 나아만속에서 교만함을 보게 된다. 가인도 자신의 수고와 제물을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으신 것을 알고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창4: 5) 우리의 기준과 경험과 가치를 하나님 말씀 앞에 내려놓고 겸손히 순종하자.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이아 살같이 회복되었다.
그때에야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도로 와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고 고백하며 예물을 드리고자 한다.
우리가 순종으로 나아 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것으로 인해 신앙이 확증되는 것을 경험한다. 순종이 없으면 신앙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가 높은 돌 위에서 불안해 떨 때, 아버지는 뛰어내려라 내가 안아 주리라고 한다. 어린아이들은 아버지를 믿고 자신을 그냥 던져버린다. 그런데, 커 갈 수록 뛰어내리기를 주저하는 경우도 본다. 신뢰와 믿음은 순종으로 자신을 던짐으로 증명이 되는 것이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며 예물을 받지 않는다. 강권하지만 거절한다.
나아만이 청하여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달라고 하여 번제물과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않겠다고 한다.
(눅 4: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
2. 한명의 사마리아인만 돌아가 감사함(15-16절)
그런데, 여기서 갈림길이 있다. 열 명 중 아홉 명의 선택과 한 명의 선택이 다르다. 아홉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그 중의 한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소리를 높여 낫기를 간구했던 외침, 헬라 원어로 ‘아우토이 에란 포넨’은 "그들이’란 말 첫 머리에 있어서 힘 있는 말투로 되었다. 병듦을 고침 받고자 10명이 이쳤는데, 이제, 큰 소리의 외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는 한 명뿐이다.
그는 돌아온다.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를 표한다. 얼마 전까지 멀리서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그가 예수의 곁 발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그가 온전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누가는 밝혀준다. 나머지 아홉은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은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고, 혼혈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개처럼 취급받던 천한 신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비록 문둥병에서는 치유 받았다고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그 천한 신분은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깨끗한 몸은 얻었지만 여전히 세상에서는 천한 신분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사람만은 자기가 나았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 앞에 엎드려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3. 예수께서 나머지 아홉을 찾으심(17-19절)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돌아온 그 일인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아홉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을 다 기다리셨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이미 이 사람들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제사장에게 갔다가 예수님 앞에 다시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러 나온 사람은 이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똑 같이 고침을 받았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유대인이라는 더 좋은 조건을 가졌으면서도 오지 않았습니다.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고, 그렇게 감사한 일을 당했는데 왜 예수님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그 아홉의 변명' 이라는 작자 미상의 글이 하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의사와 제사장에게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 겠다' 해서 갔다는 겁니다.'
이게 나은 것 같은데 정말 나았는지.' 아주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지' 그래서 가버렸어요.
두 번째 사람은 혹 '재발 가능성이 있는지도 몰라. 그런고로 며칠 두고 봐야겠다.
'이거, 신중론이요. 이거 나았다고 하는데 꿈같은 얘기라서 정말 나았는지 좀 기다려 봐야겠다는 거예요.
세 번째 사람은 '내 병은 본래 문둥병이 아닌 좀 특이한 피부병 정도였던가 보다.' 이건 회의론자입니다.
네 번째 사람은 '내 병은 나을 때가 돼서 나았을 거야.'이건 자연현상으로 보려고 합니다.
어떤 병 걸렸다가 나았을 때 "어떻게 나았어?" "그저 뭐, 약도 좀 쓰고 병원에도 가긴 했지만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나봐."
다섯 번째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밭과 재산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이게 궁금해요. 이제 먹고 살아야 하겠으니까? 그래서 그걸 빨리 알아보기 위해서 가버렸어요.
남들보다 늦어진 삶을 보상받기 위해 더 열심히 살고자 가버렸다.
여섯 번째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같이 있었던 가정과 식구들, 특별히 아내가 수절하고 있는지 그게 궁금해요. 그래서 가버렸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해준 것이 없잖아.'안수를 해준 것도 아니고, 어루만져준 것도 아니고, 안찰을 한 것도 아니고, 약을 준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아, 그저 "가서 보여라" 한 말씀 밖에 안했는데 아, 뭐 예수님이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란 말입니다.
여덟 번째 사람은 '다른 유명한 랍비들도 이런 것은 아마 가능할는지 몰라.' 예수님의 능력을 상대화 해버렸단 말입니다.
아홉 번째 사람은 '이 모습대로 갈 수는 없잖아. 가서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고 예물을 가지고 그리고 예수님께 가야지.' 그래서 가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그 아홉의 변명|작성자 우림과 둠림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 17:16-17)
이 문둥병자가 낫고 나서 예수님을 찾아갔는데 돈 가지고 간 것 아닙니다. 선물 사들고 간 것 아닙니다. 그저 너무 감사해서, 그저 너무 기뻐서, 즉각적으로 나가서 그 발아래 자신을 낮추고 엎드리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를 표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심정을 원하셨습니다.
감사절, 우리는 한해를 돌아보며 주님 앞에 어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어령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별사탕이나 혹은 풍선 같은 것을 만들지만
어둠 속에서는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는지요 하나님
바람개비를 든 채 잠들어버린 유원지의 아이를 말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저 은빛 날개를 펴고
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를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발톱처럼 무디어진 가슴을 찢어야 하고
코피처럼 진한 후회와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데
하! 하나님은 어떻게 그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도 다 셀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그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저 이 가슴 속 깜깜한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내 가난한 말들을 모두 당신의 제단에 바치겠나이다
향기로운 초원에서 기른 순수한 새끼양 같은
나의 기도를 바치겠나이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추수감사절 진주에서 김광영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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