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 책숲사이 인상깊은 구절들
01■ 서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영주의 마음이 일터를 반긴다. 영주는 몸의 모든 감각이 이곳을 편안해함을 느낀다. 그녀는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말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해서 되뇌던 이런 말들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p.10)
영국 그룹 킨Keane 의 앨범 <호프스 앤드 피어스 Hopes And Fears> 2004년 발매 https://youtu.be/zZ171q37yo8 (영주가 서점에 트는 음악)
예전에 하루를 완벽히 통제하고 싶어 메모를 했다면,
지금을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히기 위해 메모를 한다.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에 따라 읽고 나면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
02■ 이제 더는 울지 않아도 된다
휴남동 가정집들 사이에 휴남동 서점이 문을 열었다.
서점은 아픈 동물처럼 숨을 헐떡이며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서점이 뿜어내는 은은한 분위기가 동네 사람들을 끌어들였지만,
이내 발걸음이 줄었다.
몸 속에 피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얗게 앉아있는 영주 때문이었다.
(p.14)
영주의 웃음이 꾸민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있었다.
민철엄마였다.
“가게 사장이 그러고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오긴 하겠어?
책 파는 것도 다 장산데 고상하게 앉아 있기만 해서 어떡해?
돈 버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줄 알아?”(p.14)
예쁜얼굴, 화려하게 차려입음, 일주일 2번씩 문화센터서 중국어와 드로잉을 배움
끝나면 집으로 가는 길 항상 서점에 들러 영주의 안색을 살핌.
그러고보면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 한없이 몸이 꺼지더라고.
기운도 없고, 민철이 낳고 한동안 병자처럼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몸이 아픈 건 이해가 가는데, 마음이 왜 아픈지를 모르겠는 거야.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우울증이었던 것같아
(p.15-16 민철엄마의 대화)
영주는 어느 날 문득 자기가 더는 울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는 울지 않아도 생각하자 홀가분했다.
맥없이 앉아 있는 나날도 서서히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보다 더 기운이 났다
하지만 당장 서점을 위해 뭔가를 할 마음은 나지 않았다.
대신 열렬히 책을 읽었다.(p.16-17)
03■ 오늘 커피는 무슨 맛이에요?
민준은 바로 앞 매데에서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손바닥 크기만 한 메모장이 책갈피처럼 꽂혀 있었다.
‘한 사람은 결국 하나의 섬이 아닐까 생각해요.
섬처럼 혼자고, 섬처럼 외롭다고요.
혼자라서, 외로워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도
생각해요, 혼자라서 자유로울 수 있고, 외로워서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민준은 메모장을 원래대로 다시 꽂고 책 제목을 확인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라고 적혀있었다.(p.21-22)
“일하려면 충분히 쉬어야 하고, 쉬더라도 돈은 일정 금액 이상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하잖아요” 영주의 말을 듣고 민준은 계약서를 다시 읽어봤다. 주 5일, 하루 여덟 시간, 시간당 1만 2천원 알바비를 정한 것이다. (p.26)
04■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
서점 오픈 전까지 영주는 소설을 읽는다. 소설은 영주를 자신만의 정서에서 벗어나 타인의 정서에 다가가게 해줘서 좋다. 소설 속 인물이 비통해하면 따라 비통해하고, 고통스러워하면 따라 고통스러워하고, 비장하면 따라 비장하게 된다. 타인의 정서를 흠뻑 받아들이고 나서 책을 덮으며 이 세상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p.29)
요 며칠 영주가 읽고 있는 소설은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정말이지 철저히 떠나온 여자였다.(p.29)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