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밭 갈기이다. 밭을 가는 일은 노동이요 작업이다. 밭을 가는 일에는 힘이 들어간다. 땀을 흘려야 한다. 밭 갈기는 고통이다. 하루아침에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지속적인 고통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 밭 갈기의 끝에 파종의 보람을 경험하게 된다. 밭은 이제 씨받이의 장이 된 것이다.
시편 기자는 밭가는 이가 또한 내 등을 갈고 있다고 고백한다. 길게 고랑을 만든 우리네 등줄기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우리는 인생이 비로소 고통의 긴 과정임을 인지한다. 그러나 땀 흘림은 그 자체가 존재의 보람임을 확인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_이동원. 『묵상의 샘』. 압바맘마, 2014. 276-277쪽
순례의 여정은 순례자로 하여금 자주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떠난 곳에서부터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겪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실상들과 길 위의 일들의 의미들이 점차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것들과 멀어지는데 그 의미는 점점 더 깊어진다.
시인은 이를 표현한다. 시인이 겪은 현실 즉 등에 고랑이 파일 만큼의 고통과 거듭되는 시련들도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커 보이던 악의 힘도 곧 말라버리는 지붕 위의 풀이다. 눈 앞에 있을 때는 태산처럼 덮쳐오는 파도이나 은혜로 겪고 나면 물거품과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순례는 이 둘을 다 마음에 담는 것이다. 결코 고난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그것만이 유일한 실재인 양 말해서도 안된다. 순례자는 그 둘을 다 마음에 담고 그 가운데 길, 즉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길을 걷는다. 그래서 온전한 순례자 자신은 사라져 버리고 주님을 향한 찬양만 남게 된다.
_오경웅. 『시편사색』. 송대선 옮김. 꽃자리, 2019. 701-702쪽
1. 시인의 고통
시인은 원수로부터 어떤 괴롭힘을 받았다고 토로하고 있는가?
1절에 보면, 소시로부터 여러번 괴롭힘을 당하였다고 한다.
2절에서도 이 내용은 반복될 정도로 그 고통은 심각한 것이었다.
3절에 보면, 그 흔적을 밭 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신앙인의 길에 이런 뚜렷한 고난의 길이 보일 수 있다. 반복되며 지속적인 악인의 시험.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금식하고 주리신 이후 사단에게 시험받았고, 그 사단은 잠시 물러 갔으나, 주님의 공생애 내내 계속해서 괴롭혔다.( 눅 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바울사도도 역경과 핍박의 시간들을 보냈다.
고후11:23-29에 그의 고통의 시간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엿으니 .... ’
다윗의 경우도 그는 사울로부터 오랫동안 핍박을 받았다.
우리도 그리스도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할때 안팎의 온갖 시험을 당할 때가 있다.
직접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일 수도 있겠지만, 수시로 닥쳐오는 온갖 어려움과 문제일 수도 있다. 질병과 사고, 실패의 쓴 잔과 거절의 경험일 수도 있다.
2. 하나님의 응답
소시적 부터의 여러번의 괴로움. 하지만, 그 원수가 시인을 이기못하였다.
왜일까? 그를 향한 이런 집요한 공격을 감행한 원수는 왜 이기지 못한 것일까?
4절에 보면, 그 답이 나와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이다.
의로우신 그 분이 악인의 줄을 끊이심이다.
시인의 살갗과 몸둥아리에 고의적으로 골 깊은 상처를 내어 피범벅이 된 고통의 현장.
하지만, 여호와께서 그 소에 연결된 쟁기의 끈 고통의 줄을 절단하신 것이다.
골1:14을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나신 자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망의 줄을 끊으사. 우리로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같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히 12:1-3
모든 무거운 것과 얾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하신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3. 원수의 재앙
이 원수는 이제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 것이다.
저희는 지붕의 풀과 같이 자라기 전에 마를 것이다.
‘지붕위의 풀’은 ‘박토에서에 자라는 풀’로도 해석될 수 있다. 팔레스틴은 온통 바위투성이다.
암반층 위에 얇은 토양층이 살짝 덮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박토에서 씨앗이 발아하고, 풀은 자라지만, 곧 시들고 만다. 얇은 토양층이 그것을 지탱하지 못한다.
악인은 주님의 심판으로 인해 처량하고 우스꽝 스러운 신세가 될 뿐이다.
그들이 호통친다할지라도 바위위의 풀과 같이 금방 시들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주님은 ‘몸만 죽일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 말고 몸과 영혼을 지옥불에 던지시는 이를 두려워 하라’고 하였다.
♣ 말씀을 맺으며
어릴적 부터의 여러 괴롭힘.
하지만, 주의 의로우신 손이 악인의 줄을 끊으시고, 원수는 수치를 당하여 물러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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