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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 14장 43-52절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이 사람의 손에 넘겨 고난을 당하는 사건과 나타난 작은 소동을 통해,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그를 떠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본 단락은 앞 대단락(14:12-42)과 뒤 대단락(14:43-15:15)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한다. 본 단락의 앞 단락(32-42)과 함께 겟세마네 장면의 한 부분을 이룸으로 앞 단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지만, 다른 한편 앞 대단락의 예견들(넘겨짐, 버림, 부인, 고난, 죽음 등)이 본 단락에서부터 성취되기 시작하는 주제상의 전환을 알리고 있다.

 

1/ (43-45) 가룟유다의 입맞춤

 

열두 제자 중 하나가 주님을 배신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려고 택하신 제자(3:14)가 고난을 넘어 부활까지 주님과 함께 가기를 포기하고 검과 몽치를 가진 무리와 함께 있다. 입맞춤은 샬롬(평안)을 비는 가장 친근한 인사를 한다. 서로 안녕을 비는 신뢰와 애정의 표현의 입맞춤이 배반의 암호가 되고 있다.

유다는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 아닌 검과 몸치의 길을 선택한다. 전에는 주님을 따르는 열둘 중 하나였지만, 이제 주님을 팔아넘기는 자 되었다. 주님을 향한 입맞춤도 주님을 배신하는 군호의 기호였다. 그는 주님을 따라다녔으나, 그 길을 걷기를 원치 않는 자였다.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주님의 길을 따라가고 있나?

 

2/ (46-49) 순응하시는 예수님

 

곁에 있던 한 제자(26:51, 22:50)가 검을 빼어든다. 그 역시 십자가의 길을 알지 못했다. 유다가 검과 몽치를 든 자 편에 섰다면, 이 제자는 검을 들어 예수님의 길을 대적한다.

 

(26:51-53)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22:50-52) [50]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베드로는 검을 꺼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떨어뜨린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없고 검과 몽치들 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옴으로 베드로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그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3/ (50-51) 도망치는 제자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다. 한 청년은 베 홑이불마저 버리고 도망한다. 호산나의 찬양, 칼을 휘두르기, 초봄에 베 홑이불 하나만 걸치고 주님 따를 열정을 보일 수 있지만,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 지기는 어렵니다. 그는 사실 깨어 있지 못하고 여전히 베 홑이불을 덮고 잠든 영혼이다. 시험 앞에서 이런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지금 말씀 앞에서 벌거벗은 듯 드러나 모습을 주님께 고백하자.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예수님이 성전에서 그들을 가르치실 때, 그때는 그들이 그분을 붙들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그때 예수님은 그들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고 책망하셨다. 그런데 이제 역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마치 강도대하듯 붙들러 온다. 마침내 예수님을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성경이 성취되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 선언은 이사야 53:12을 염두에 두신 걸로 보인다.

(53: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처럼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 강도처럼 취급을 당하시는 것까지 감수하시며 죽음의 길을 가시는데, 모든 제자들은 앞서 예고된 대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만나. 예수님을 붙잡는 무리를 무력으로 대항하려 하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무력으로 저항하실 의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모두 도망친다.

 

오늘 우리는 폭력에 대해 어떻게 저항하는가? 유다처럼 폭력의 편에 서고, 베드로처럼 폭력으로 맞서고, 또 다른 여러 제자들처럼 굴복하고 도망치고 있지 않는가? 주님은 폭력을 사랑으로 순종으로 맞으신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은 군사사열의 모습을 한 목사님에게 보여줬다. 이렇게 힘이 있으니 감히 까불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때 목사님은 말했다. “칼을 가지는 자 다 칼로 망한다고 성경에 있는데, 이렇게 무력을 자랑하는 걸 보니 곧 일본이 무력으로 망하겠군요.

 

로마정부와 유대종교는 예수님께 대항해 공모를 꾸며 그분을 붙잡았지만, 그분은 해를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에 대한 굳은 확신 가운데 그분은 검과 몽치를 사용하기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주님, 당신은 검이 아니라 말씀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옳은 일을 하려 하 때도 계속해서 폭력을 사용합니다.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목표뿐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도 가르치소서

 

* 참고도서

매일성경 20203,4월호 마가복음, 성서유니온,p.118

매일성경전집 복음서, 사도행전’, 성서유니온, p.164

양용의,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 p.343

유진피터슨, ‘복음으로 드리는 매일기도’, 홍성사,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