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7 편
이 기도는 긴급하고, 예민하고, 정직하고, 감동적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호소하며 그분이 대답하시고 행동하실 것을 확신한다.
(시 17 편은 앞뒤 시편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편 15, 16, 17편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의 보호를 요청한다. 세 시편 모두 실수하는 것, 흔들리는 것 혹은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는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히브리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시편 15~18편은 각각에서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피난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왜 다윗의 기도를 들으셔야 하고 그의 피난처가 되셔야 할까? 시편 17 편에는 1, 6, 13절에서 시작하는 세 가지 호소의 묶음이 있다. 처음 자신의 결백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호소한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에 근거해서 호소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에 근거해서 호소한다.
1. 다윗의 결백 (1~5절)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1~2절)
다윗의 결백은 정직함에서 비롯된다. 그의 “입술은 거짓되지 아니하다.” 하나님은 위선을 꿰뚫어 보신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과 마음의 깊은 비밀을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이 속임수를 아신다. 하나님은 정직한 기도를 들으신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3절)”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4절)”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5절)”
하나님은 다윗을 점검하셨고 그가 결백하다는 것을 발견하셨다.
이 시험은 강렬하다. 그가 ‘오셨다’라는 단어는 검사와 같이 목적있는 방문의 의미가 있다. 회계감사가 사무실을 방문할 때, 연대장이 막사를 방문할 때 점검하는 것과 같다.
이 시험은 또한 철저하다. 하나님은 다윗의 전 생애를 세밀한 빗으로 훑으셨다. “마음”은 감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생각과 그의 전적인 내적 존재를 말한다. 다윗은 또한 그의 말들을 점검하시도록 하나님을 초청한다. 그의 ‘입’은 ‘범죄’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기도가운데 그분께 나오는 사람의 삶을 알고 계신다. 이사야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고 말한다. “드러나 있고 고백되지 않은 죄는 기도에 있어서 엄청난 장애물이다.”
하지만, 경건한 삶이 기도할 때에게 당신에게 단단한 기초를 제공한다.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2. 하나님의 사랑 (6~12절)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6절)
어떻게 다윗은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7~9절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백성으로 맺으신 언약적 약속을 거슬러 언급한다.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려 나오시고 한 민족으로서의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 보이는 신실하심을 거슬러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오른손”은 하나님이 홍해를 통해 그분의 백성을 바로에게서 구하셨을 때의 시간을 거슬러 가리킨다. 파도 위에 떠 있는 깨진 전차들의 파편들과 함께 그들이 홍해 변에 섰을 때, 모세는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출 15:6)라고 말했다.
“눈동자”와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나를 감추사”라는 구절들은 모두 출애굽을 묘사하는 모세이 위대한 노래를 회상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0~12)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다윗의 확신은 그가 처했던 위험을 생각할 때 더 명확해 진다.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10~12절)
3. 다윗의 사랑 (13~15절)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호소함으로써 이 시편을 마무리한다. 마지막 절들은 다윗과 그이 적들 사이의 대조를 그린다. 그의 적들은 세속적이다. 하지만 다윗은 창조주를 사랑한다.
악한 자들은 이 현존하는 세상을 사랑하고, 다윗은 그들을 꾸짖으시도록 하나님께 요구한다. 다윗은 13절에서 호소의 세 번째 묶음을 시작한다.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이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13~14절)
사도요한은 말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세속성의 본질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 즉 열망들과 자부심,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들이다. 누군가를 세속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기업이 이 삶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 인정, 존경, 지위, 돈, 즐거움, 안전을 위해 살고, 다가오는 세상을 갈망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서 반복적으로 믿지 않는 우상숭배자들을 땅에 거하는 자들로 언급하고 있다. 다윗은 땅에 거하는 자가 아니다. 그의 기업은 이 삶에 있지 않다. 하나님이 그의 보상이다. 시편 16편 5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라고 말했다.
시편 17편을 이렇게 말하며 마친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15절)
4. 다윗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당신이 나를 감찰하셨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셨사오니.”
우리가 이전에 본 것처럼 오직 한 사람만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성경에는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세속적이지 않다. 그분의 기업은 이 삶에 있지 않았다. 그는 다가오는 세상에 단단히 고정하셨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궁극적으로 이 시편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예언이다. 예수님의 기도에 하나님이 들으신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눔룰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진주 주약교회 수요 시편강해 김광영목사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우리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는 변호사, 의로우신 분, 그리스도가 계시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 역시 들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