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주약교회 새벽설교 '빌레몬서' _ 동역자인 빌레몬에게

주님의 약속 2021. 11. 4. 18:07

  바울은 복음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혔다. 그 갇힌 중에도 복음을 전하였는데 오네시모는 그를 통해 복음 듣고 회심하였다. 그는 골로새의 노예출신이다.

(28:30-31)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1: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본론

 

바울 사도가 자신을 일컫는 말이 얼마나 훌륭한가? 그는 권위나 권력을 드러내는 직함이 아니라 사슬과 속박에 대해 이이기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은혜를 입는 것보다 자신이 그를 위하여 겪는 고난을 자랑스러워 한다. 바울 사도는 임금이 자신의 왕관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보다 더 자신의 사슬을 자랑스러워하였다(크리소스톰)

바울은 자신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이라고 표현한다. 바울 서간 인사말에 자신을 수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빌레몬서가 유일하다. 물론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에서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갇힌 자라고 사실을 이야기 하지만, 인사말에 자기 이름과 함께 그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빌레몬서가 유일하다. 자신을 사도대신에 그리스도의 예수를 위하여 갇힌자라고 표현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자신이 사도의 권위를 내세울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 이다.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빌레몬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바울 사도가 권위있는 태도를 의도적으로 삼가고 있다.

그는 사회적 위계를 따라 차례로 인사를 건넨다. 아킵보빌레몬과 압비아의 아들이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이 믿음이 깊고 선행에 열심임을 자신이 안다는 사실을 매우 훌륭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아킵보는 골로새 교회의 감독이라고 본다.

4-7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빌레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을 전함으로써 교묘하면서도 솜씨 좋게 자신의 뜻을 빌레몬에게 전달한다. 바울은 아울러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는 사실에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고 일러준다. 바울이 이 용어를 전략에 따라 반복하고 적재적소에 비치한 것은 그의섬세하면서도 신중한 수사 전략의 일부로 보인다.

 

바울사도는 빌레몬의 화를 가라앉히고 자신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빌레몬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청을 들어주기 바라며 매우 조심스럽고 품위 있게 부탁한다(요한 크리소스톰). 바울은 자신이 노인이며 수인 신세임을 호소하는 한편 빌레몬의 영적 성장과 주님께서 그 상황을 좋게 이용하시면, 빌레몬이 어떤 은혜를 입게 될지 강조한다(테오도루스)

사도는 충분히 마중물을 부은 뒤, 내 아들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오네시모라는 이름이 유익한이라는 뜻에 주목해야 한다. 바울이 위하여 호소하는 사람은 빌레몬의 노예가 아니라 바울의 아들이다. 바울은 무슨 말을 하려고 이 단어를 사용했을까? 자식도 아닌 이를 자식이라고 표현한 이 언어는 관계를 바꿔 놓은 매우 중요한 발전을 전달한다.

옥에 갇힌 바울이 노예인 오네시모를 이끌어 그리스도를 믿게 했다. 사도는 오네시모가 이전에는 빌레몬에게 무익한사람이었음을 기꺼이 인정하려 하면서도 이제는 오네시모가 빌레몬은 물론 바울 자신에게도 유익하다는 말을 재빨리 덧붙인다. 바울은 이렇게 오네시모의 이름을 사용해 맛있는 언어휴희를 식탁에 내놓는다. 과거에 그 이름에 합당치 않게 살았음을 인정한다. 그 과거는 이제 현재가 아니다. 오네시모는 누가 보아도 확실히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

바울사도가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에게 명예롭게 돌려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밑 작업이 필요한지 보라. 사도가 얼마나 지혜롭게 그 일을 하는가? 빌레몬이 사도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도록 얼마나 잘 설득하며 또 오네시모를 얼마나 존중하는가? 사도는 빌레몬 에게 자신이 오네시모를 곁에 둔다면 그가 빌레몬 대신 자신의 시중을 들 수 있고, 그것이 빌레몬에게 유익하다고 말한다.

 

바울은 능숙하게 글을 한 마당 펼쳐 놓은 후에 17절에서 마지막으로 그의 호소를 제시한다. 사도는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라고 운을 뗀 뒤, “(오네시모)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고 마무리 한다. 이어 바울은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이라고 말한 뒤, 그것을 자기에게 요구하라며 내 앞으로 계산하라고 덧붙인다. 사도는 빌레몬이 오네시모의 귀환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네시모를 생각하여 자신과 빌레몬의 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한다.

22절에서 빌레몬에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요구한다. 바울은 자신이 묵을 숙소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나님이 빌레몬과 그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바울 자신을 빌레몬과 그 교회에 회복시켜 주시길”(다시 가게 해 주시길 혹은 허락해 주시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바울이 편지를 그냥 후다닥 갈려쓰고 아주 골치 아프고 미묘한 문제에서 손을 떼려는 것이 아님을 굳이 속내를 감춤 없이 되새겨 주는 역할을 한다.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를 풀 길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바울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문제가 발생한 여러 관계도 화해시켜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

 

빌로몬서의 가장 중요한 의미와 목적은 계급이나 다른 차이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복음의 능력이 신자의 삶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움과 관련이 있다. 빌레몬서를 꼼꼼히 연구하면 바울은 노예제도 자체가 아니라 인간관계를 바꾸고 화해를 가져오는 복음의 능력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