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3장 1-8절 성령의 새롭게 하심
1/ 그들이 기억할 것
(1-2절)
[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바울은 경건이란 일반적 사회질서, 세속국가의 법을 잘 지키고,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인격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가르친다(1-2절)
(벧전 2:13-15)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롬 13:1-7)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2/ 권면자의 자리
(3절)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마지막으로 바울은 디도에게 자신들이 원래 죄인이었음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3절). 바울은 ‘우리’라는 단어를 통해 이방인인 디도나, 유대인이 자신이나 동일하게 가증한 죄인어었다고 말한다.
이는 그레데인들이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우리도’ 과거에는 죄인들이었음을 기억함으로써 이겨내라는 뜻일 것이다.
(빌 3:4-6)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런데도 그는 “한 때 어리석고 그릇된 길에 빠졌음” 기억한다.
3/ 우리를 구원하실 때
(4-7절)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바울은 자신이 구원을 받고, 경건한 삶게 된 것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덕분이라고 고백한다(4-6절).
사역자는 절대 ‘저들보다 내가 낫다’라는 의식을 가져서는 안된다. 오직 성도들이 선을 행하도록 권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도자의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건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 자신도 원래 죄인이었음 기억하며 겸손히 행하여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악에 절어 있었기에 깨끗해 질수도 없었을까? 우리에게는 새로운 탄생이 필요했다. ‘거듭나다’라는 말에 그 뜻이 함축되었다. 집이 황폐한 지경에 이르면 아무도 버팀목을 대지 않고 낡은 건물은 증축하지 않는다. 밑바닥까지 다 허문 다음 완전히 새로 짓는다. 우리의 경우도 그랬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저 손보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로 만드셨다. (요한 크리소스스톰, ‘디도서 강해’)
(요 19:32-34)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 신비를 그냥 지나치지 말라, 이 피와 물에는 세례의 상징과 신비들이 들어있다. 교회는 이 두 가지로부터 생겨났다. 곧, 세례와 신비들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졌다. 그런데 세례와 신비들의 상징인 물과 피는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다. (요한 크리소스톰)
(롬 8:24-25)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었고,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 우리는 칭의로 의롭게 되었다.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와 더불어 상속자가 된다는 감격스러운 사실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