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말씀 묵상

시편 150편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주님의 약속 2021. 9. 5. 14:14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150:6)

 

1/ 예배할 장소(1) : 어디서

[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예배의 이유(2) :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예배의 방법(3-6) : 어떻게, 누가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산다는 것은 칠흑 같은 더움과 안개 속을 뚫고 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잠시 밝음의 세계가 눈 앞에 전개되기도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어둠이 확고히 우리를 에워싼다. 길이 끊기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벼랑 앞에서 현기증을 느낄 때도 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충만과 공허, 의미와 무의미, 빛과 어둠이 수시로 갈마든다. 삶은 이런 두 계곡 사이에 걸린 줄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사람은 누구나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한다. 히브리인들은 인생의 여러 순간에 그들을 구원해준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의 마음을 아뢰었다. 크게 분류하자면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느낄 때 터져 나오는 감격과 환희의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숨어 계신다고 느낄 때 토로하는 안타까움과 탄식이다. 시편은 인간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그 감정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시편 속에는 증류되거나 표백되지 않은 적나라한 인생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시편을 읽게 된다.

 

우리가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흔히 끝이고

끝을 맺는 것은 곧 시작하는 것이다.

마지막 지점이 바로 출발점이다.(T. S. Eliot)

 

 

기도의 끝은 찬양이다. 여기서 마지막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말 그대로 끝인데, 마지막 시편 150편에 나타난 마지막 말이라는 뜻이다. 두 번째 의미는 목적지로서, 모든 시편 기도가, 여행길에 단지 간헐적으로 햇볕이 드는 땅을 밟아 본 추억을 안고, 고통과 회의와 곤경이라는 지도에도 없는 숨겨진 나라들을 통과하는 기나긴 여정 후에 도착하는 곳이다.

대개의 시편들은 불평 투성이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어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쥐어짜낸 것이다. 명실상부한 시편 학자 헤르만 궁켈은 불평의 기도야말로 시편의 척추(탄식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도들을 찬양들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어떤 점에서 적절한가? 이것은 숱한 고통과 회의와 곤경의 내용을 매력적인 미소로 포장한 허위광고에 지나지 않는가?

 

시편의 이러한 정교한 결론은 우리의 기도가 찬양으로 마쳐질 것이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절대 서둘 일이 아니다. 어떤 기도가 할렐루야에, 그리고 시편 145편에 나타난 두자음 시에서 시편 146-150편에 도달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심지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모든 기도가 하나같이 찬양으로 매듭지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도는 그렇지 않다. 시편이 진정한 안내자라면 말이다. 그러나 기도와 기도하는 삶은 결국에는 찬양이 된다. 기도는 항상 찬양을 향해 나아가며, 결국에는 거기에 도달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 가운데 인내한다면, 웃고 운다면, 회의하고 믿는다면, 씨름하고 춤추고 또 씨름한다면, 우리는 확실히 시편 150편에 이르러서 벌떡 일어나 앙코르! 앙코르!”하며 갈채를 보낼 것이다.

뒤에 이어질 음표를 따라 멜로디의 완성을 기대한 음표처럼, 기도에는 항상 그 안에 이러한 미래성의 요소가 있어서 우리를 완결의 기재 즉 영광과 찬양의 지대로 끌고 간다.

시편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믿음의 모험으로 삶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모든 기도 경험은 찬양으로 귀결되는, 철저한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기도든 모든 기도의 마지막은 찬양이다. 우리의 삶은 선으로 채워진다. 땅과 하늘은 각별하게 연결된다. 소리 나는 제금은 영광을 선포한다. 찬양, 아멘, 할렐루야. (828)

시편의 마지막 노래 150편은 애오라지 찬양하라는 권고가 전부이다. 찬양과 찬미 그것만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것이리라. 삶의 여정 가운데 만난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이해하며 터득한다. 이해하지 못한 것들은 우리를 얽어매고 되새기게 하지만 어느 순간 이해되고 몸에 녹아든다.

그렇게 이해되고 나면 사라진다. 그저 사건을 지나 터져 나온 탄식과 감격, 생생한 찰나들은 영혼 속에 아로새겨진다. 그 탄식과 감격이 뭇사람들과 함께 공명을 일으키면 거기에 음률이 더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찬양은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세대를 잇게된다. 책으로 시편은 끝나지만 찬양은 영원히 이어진다.

우리는 마침내 시편 150편에 이른다. ‘호흡이 있는 자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들 모두가 그렇게 하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부터 그분의 호흡이었다. 주시고, 가져가시고, 그리고 다시 주시는 분이시다.

(104:29-30)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편의 마지막은 할렐루야로 마무리된다. 성도의 인생은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마무리되어야 할 인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그를 찬양해야 한다. 그는 창조의 주님, 섭리의 주님, 그의 구속의 놀라운 은총을 인하여 그를 찬양해야 한다.

1/ 예배할 장소(1) : 어디서

마지막 시편은 할렐루야를 선포하며 강한 크레센도로 시작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가 없다. 그분은 성소에서 찬양받으셔야 한다. 나아가 그 권능의 궁창에서 찬양 받으셔야 한다.

2/ 예배의 이유(2) :

그분의 능하신 행동을 인한 또한 지극히 광대하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3/ 예배의 방법(3-6) : 어떻게, 누가

비파와 수금도, 소고치며 춤추며 제금으로 찬양한다. 더 크고 소리가 커서 더 특별한 음악을 연주하는 큰 소리 나는 제금도 사용해야 한다.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이 찬양해야 한다.

여호와를 예배하는 일에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 알려진 모든 악기가 동원된다.

(81:1-3) [1] [아삽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 [2]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3] 월삭과 월망과 우리의 절일에 나팔을 불지어다

나팔은 고대에 사용된 휘어진 양의 뿔이다. 어떤 성경연구가는 이 악기는 오늘날에도 회당에서 사용하는 유일한 악기이다. 능숙한 연주자는 이것으로 놀랄 만큼 큰 소리를 낼 수 있다.“

3절에서 언급되는 두 악기 비파수금은 현악기이다. 그 다음은 소고그리고 현악퉁소이다(4). ‘퉁소는 아마 목동이 들고다니는 소박한 피리였을 것이다. 5절은 두 가지 심벌즈를 말한다. 악단이 구성되었다. 예배자들은 나팔을 불고 수금을 뜯고, 북을 치며, 현을 쓸어 내리고, 피리를 불고, 심벌즈를 부딪쳤다. C.S.루이스는 이렇게 적었다. “소음이 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단지 음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심벌즈를 치자. 조화로운 음악도 좋고 시끄러운 소음도 좋다. 그리고 춤도 추자

 

앞에서도 보았듯이 시편 145:1에서 시인은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라고 노래한다. 시편 5권 본론의 마지막 시편에서 하나님을 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시편의 결론을 이루는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에서도 시인은 여호와가 왕이시라고 노래한다.

시편 146-150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명령하는 할렐루야로 특징 지워진다. 이 시편들은 일종은 간증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하나님의 성품을 소개하며 찬양을 독려한다. 이때 찬양의 주체는 개인과 공동체를 넘어 모든 창조물로 확대된다. 그리고 결국 호흡이 있는 자들모두가 찬양의 추체로 호명된다. 그는 예루살렘과 온 세계를 다스리는 진정한 왕이시며, 겸손한 자를 고난과 위기에서 건져내는 구원자이시다. 우리는 시인의 요청에 따라 인간-왕을 비롯한 다른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며 그를 의지해야한다.

 

성도들아...주 앞에 모두나와, 우리의 순례여정 길 주님앞에 찬양드리자.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주신 분이 오로지 하나님이심을 알고 겸손히 무릎꿇었던 다윗처럼,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오직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받을지로다고 찬양한 욥처럼. 주님께서 마침내 우리에게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으로 나타나실 것을 소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