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강해

디모데후서 2장 1-7절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주님의 약속 2021. 8. 7. 08:21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의 시기에 모두 감옥에 갇힌 바울과 함께 복음을 버렸다. 하지만 오네시보로와 그의 집은 예외였다. 그들은 바울을 찾아보고 유쾌케 하였다. 이제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속에서도 그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 그 복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Kerigma

 

1. 진리의 전달 (2:1-2)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뭐라고 말하든, 어떻게 행동하든 신경꺼라. 또 니가 얼마나 약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사람인지 결코 염려하지 말라. 너에 관해서는 디모데야 강해지도록하라!”

바울의 권면이 여기에 그친다면, 그것은 디모데를 당황케만 했을 것이다. 소심한 사람에게 용감해 지라는 것은 달팽이에게 빨리가!‘ 말더러 날아가!’ 라고 말하는 것과 매 한가지다.

이것은 스스로 이를 악물고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를 통해서 내적으로 강하게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힘을 취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면 복음을 위한 봉사의 일도 그 분의 은혜부으심으로 되는 것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자신을 강화시켜야 될 필요가 있는 사역의 종류를 지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디모데가 신앙을 보존하고 맡긴 것을 지키는 수준의 권면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것을 전달하고 전수하는 능동적 역할을 해야한다.

 

이 진리의 전달에 대한 4단계를 살펴보자.

먼저, 신앙은 그리스도에 의해 바울에게 맡겨졌다. 그것은 신앙이 발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탁에 의해서 그의 것이 되었다.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12)

두 번째로 바울은 디모에게 맡겼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진리가 되어졌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순교를 앞둔 마당에 더 이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에 디모데에게 이미 첫 번째 서신을 통해 복음에 대한 부탁을 했고, 또 부탁하고 있다.

많은 증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들었던 가르침으로 전달하라는 것이다.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이 판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사적인 계시들을 가지고 있으며 사도들로부터 전달된 비밀 전통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울은 어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열려지고 또 어떤 진리는 소수에게 특별히 비밀리에 맡겨졌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들은 것을 지금 그는 분명히 아시아의 많은 배교자 가운데 배교하지 않고 남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야 한다.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이 남겨두신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인처럼, 하나님이 악한 시대가운데 남겨두신 충성된 자들이 분명히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 전달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바울-디모데-충성된 사람-또 다른 사람이 계보가 바로 사도적 계승이다. 마치 올림픽 성화의 횃불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전해지는 것처럼, 이 사도적 전승 부탁한 아름다운 것은시대를 거쳐 전수되어야 하는 것이다.

 


 

2. 비유를 통한 열매를 위한 수고설명

 

바울은 세 가지 은유를 통해 디모데의 사역이 수고와 고난을 내포하는 분투적인 것이 될 것임을 강조해 주고 있다.

 

(1) 헌신적인 군사

 

현역 근무의 군사들은 안전하거나 편안한 시간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험과 고난을 감수한다. 군인들이 전쟁을 위해 일어나는 곳은 안락한 침상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역경과 엄격함과 텐트의 생활을 겪으며 전투를 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편안해 때를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일, 그가 복음에 충성하려고 한다면 그는 분명히 반대와 조롱을 감수해야 할 것이며 그의 전우들과 함께 고난을나누어야 한다. 또한, 현역 군인은 개인 사업에 얽매이지않고 그의 지휘관의처분에 온전히 따르기 위해 민간인의 업무를 면제받는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모든 세속적인 활동을 금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적들과의 싸움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얽매임들에 대해서 단호해야 한다. 우리를 얽매이게 하고 미혹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청년부 셀목회를 하는데 있어 나를 발목을 잡는 것이 무엇인가? 우선순위가 뒤바뀐 아르바이트인가? 개인의 안일함에 도취된 게으름인가? 어떤 중독적인 즐거움인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상 디모데처럼 소심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군사이다. 우리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짐들을 벗어버리고, 믿음의 싸움을 싸울수 있는 군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 법을 준수하는 경기자

 

헬라의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경기자의 모습을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고대 운동 경기는 경기자가 힘이나 기술을 제 멋대로 과시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경기자체는 물론이요 예비훈련을 위해서도 그 자체의 규칙을 지켰다. 또한 헬라 경기들에는 상이 있었는데, 금메달이나 은으로 된 트로피가 아니라 월계관이었다. 그러나, 경기자가 법대로경기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우수하다 할지라도 면류관을 받지 못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견고한 터위에 견고한 재료들을 가지고 건축하는 건축가와 같다. 그 규칙은 바로 불로 공력을 시험할 때에 그것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의 규칙대로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거룩한 일을 하는 세속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시도록 혹은 무언가를 해 주셨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룰을 위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곁에 심판날 선 사람들 중에 양과 염소에 대한 비유가 있다. 룰을 따라서 하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도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이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

  열심히 뛰고서 1등했다고 생각했는데 반칙퇴장 당하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차라리 경기를 하지 말든지... 이미 경기에 출전했다면 규칙을 준수해서 상 얻도록 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3) 수고하는 농부

 

경기자가 공정한 경기를 해야한다면 농부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기계가 없었던 사회에서 농부는 성공적인 농사기술과 함께 땀흘리는 정도에 의해 한해 농사의 승패가 갈린다. 아무리 땅이 척박하고, 기후가 모질고, 농부의 기분이 내키지 않아도 그는 자신의 일에 매달려야 한다.

추수때에 곡식의 첫 번째 몫은 수고한 농부에게로 돌아간다. 게으른 자는 결코 좋은 농부가 아니다. 그는 밭을 갈지 않고 씨도 제대로 뿌리지 않고 병충해를 막지도 않고 추수때에 잠을 자기 때문에, 그의 밭은 덤불과 거친 풀이 퍼지고 넘쳐서 수확물을 거두어 들일 수 없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추수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에 대한 것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고 성령을 위해 심으며(5:16 ; 6:8) 우리 자신을 훈련할 때 우리 속에서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이 나오는 것이다. 식기도 정도로 영혼사랑에 대한 불이 붙으며 주일 설교만 듣고서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꿀송이 같은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더 신기하지 않을까? 혹시 악한 시대에 선지자로 그를 파송하셨다면 모를까...?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하나님은 그대로 거두신다(6:7) 수고함으로 성령을 위해 심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의 내용처럼 영혼을 구원하는 것의 추수이다. 영혼들이 많은 돈의 투자와 어떤 빈틈없는 시스템을 통해서 구원되는가? 특별히 기도와 희생적인 인격적인 친교를 통한 눈물과 땀과 고통에 의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어렵게 획득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군인이 그의 군생활에 전념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란 결코 없을 것이며, 경기자가 경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월계관은 물건너 가고, 농부가 농사일에 땀흘림이 없으면 수확이란 결코 없다. 우리는 적당히 예배참석해주고 훈련참석해 줌으로 우리의 사역에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 위대한 바울도 주의 일을 위해 자신을 쏟아 부어 심지어 감옥에 갇히지 까지 수고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디모데라는 열매를 주셨고, 교회들을 그 땅 가운데 허락하셨다.


One point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디모데는 사도의 가르침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그것에 전념함으로 가르침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이해하도록 총명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께 총명을 받고자 한다면 사도의 말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진지한 말씀연구를 통해 그것을 파고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마구잡이로 주님의 뜻이 어떤 성경구절을 펼쳤을 때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의 삶을 향한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은 내 말하는 것, ‘나의 복음’(8)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파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연구와 공부는 실제로 수고하는 농부의 땀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말씀의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