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3번째 /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들어가는 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조르바가 아토스 산으로 향하는 한 수도승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르바도 놀이로 살고 놀이로 죽는 자유인인데, 고수가 고수를 만났다. 수도승은 조르바가주는 술과 고기를 넙죽넙죽 잘 받아먹으면서, 사실 자신은 너무 배가 고파 수도원에서 살면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수도승이 되었노라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따금 한숨 쉬며 불평합니다만…속세의 일로 한숨을 쉬는 건 아니랍니다.
속세의 일 따윈 개나 물어 가라지요. 있어 도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천국에 가고싶어요.
그래서 자주 농지거리나 미친 짓거리로 도반들을 웃기지요.
하지만 이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악마에게 들렸거니 하고 욕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요.
‘그럴 리 가있나, 하나님도 장난이나 웃는 것을 좋아하실 거야.
언젠가는 날보고, 이리 들어오너라 이 광대야, 이리 들어와 날 웃겨다오,
하고 말씀하실 거야’
그러니까 나는광대로 천국에 들어가려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절로무릎을 쳤다. 근엄한 하나님이 아니라 장난을 좋아하는 하나님이라니, 그러니 광대로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수도승이라니,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가.
창조는 장엄하다. 창조주는 지엄하시다. 하지만 거기엔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기쁨이 있다. 유대인들은 창조의 증인이자 참여자인 이 지혜가 말씀(토라)속에 반영되어 역사 속에서 줄 곧 하나님의 새 창조사역에 참여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토라에 귀를 기울이고 토라의 의미를 깨닫고 토라가 가리키는 방식대로 삶으로써 하나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일을 즐거 움’이요 ‘기쁨’이라고 시인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시 1, 19, 119편).
_박대영,「묵상의 여정」(성서유니온)
1/ 자인(일곱번째) : 49-56절
나의 소망되는 하나님말씀
[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51]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위로되는 하나님말씀
[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나의 노래되는 하나님말씀
[54]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시인은 하나님께 말씀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면서(49a절, 자기도 하나님이 예전에 주신 규례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52a절). 왜냐하면 그 말씀이 고난 중에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50a, 52b절). 말씀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을 때에는 하나님이 약속을 잊으신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하나님 말씀이 당장 이뤄지지 않 고자신이 여전히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51a절) 말씀에 근거한 소망을 얻고(49b절) 고난 중에 위로를 얻으며 ,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서 다시 살리심을 경험했습니다(50절).
그렇기에 시인은 말씀을 계속 기억 하며 그에 힘입어 스스로를 위로합니다(52절). 사실 이렇게 말씀만을 붙잡고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시인도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 때문에 맹렬한분노에 사로 잡혔노라고 고백합니다(53절).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법도를 노래하며 그런 마음을 달랩니다. 비록 시인은 나그네와 같고(54절) 어두운 밤과도 같은(55절) 현실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지 않고 그 법도를 지킨 것이 자기 재산이라고 고백합니다(56절).
세상사람들은 자기가 쌓은 재산을 보고 위로와 힘을 얻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왔다는 사실에서 힘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법을 지킨 자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모습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을 이뤄 주실 것을 믿기에, 조롱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붙잡으면 아무리 세상이 조롱해도 담대하게, 당당하게, 자유롭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 더욱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늘 묵상하십시오.
믿음과 자유의 길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교만한자에게 조롱받는 날도 있으며(51절),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인해 분노하는 날도 있습니다(53절). 하지만 시인은 악을 악으로 되받지 않았습니다. 조롱과 분노는 그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 믿습니다(롬 12:19). 우리가할 일은 말씀을 기억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고(52절), 주 의 율례들로 노래하는 것입니다(54절).
시인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나그네와도 같은 그의 삶은 우리의 삶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아마 그도 힘들고 외롭고 가난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가난하고 두려운 삶에서 그가 찾은 답은 ‘주의 법도’였습니다. 이것이 그가 가진 소유의 전부였습니다(56절). 주의 법도를 따르는 삶은 막연한 정신 승리가 아닙니다. 현실적인 성도의 자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요 14:27). 그 평안 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인자와 구원에서 오는 것이고, 악한세상의 공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자유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의 법도를 지킬 때 (56절) 우리는 어떤 대적 앞에서도 담대하게 주의 교훈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헤트(여덟번째) : 57-64절
모든 구절이 ‘헤트’로 시작하는 57〜64절 내용에 따라 57〜60절과 61〜64절로 구분할 수 있다.2°)전반부는 말씀이 시인의 소유라는 진술로 시작해 앞단락의 마지막 구절과 연결된다. 그리고 후반부는 ‘악인’ (53, 61절)과‘밤중’(54. 62절)의 심상으로 바로 앞단락과 연관된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
[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하나님말씀에 대한 헌신적 순종
[59]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60]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1] 악인들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말씀에 감사
[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3]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
[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 ‘분깃’이라고 고백합니다(57a절). ‘분깃’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 후에 할당받은 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레위인은 땅이 아니라 성소를 분깃으로 받았습니다. 레위인의 모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이 땅 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영원한 약속의 땅’에 대해 알고, 믿고, 소망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도이 세상의 땅이 아니라 이 후에 주어질 영원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오직 주의 말씀을 지키고(57b, 60절), 주님께 간구한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합니다(58절). 이 땅에서 시인이 경험하는 현실은 마치 ‘악인들의 줄’이 두루 얽힌(61a절) 상황과도 같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악한 자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거나 벗어날 수 없는 곤경에 처하 곤합니다. 또 시인이 노래하듯이 캄캄한 밤중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62b절). 그럼에도 시인은주님의 법을 잊지 않고, 그 규례들이 감사하다고 고백하며(61b〜62절), 오직 주님의 법도를 지키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63절). 아무리 세상이 죄와 불의로 가득해 보여도, 믿음의 눈을 들어 보면 세상은 하나님의 인자로 가득하며 , 하나님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습니다(64절). 아무리 악인들이 득세하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우리가 행할 길을 알려 주는 빛이 됩니다.
3/ 테드(아홉번째) : 65-72절
‘테트’를 첫 자음으로 시작하는 65〜72절은 이 시에서 전반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고난의 문제를 다시 다룬 다. 65〜68절이 고난의 문제를 일반적 관점에서 다룬 다면. 69〜72절은 대적을 언급하며 구체적으로 고난 의 문제를 다루고 시인자신의 깨달음을 진술한다.
말씀대로 응답하신 하나님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 전과 후의 변화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고난의 유익과 하나님말씀의 가치
[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시인은 상당히 힘든 고난을 겪었거나 그런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67절).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하나님이 ‘말씀대로’ 자신에게 ‘잘 대해 주셨다’라고 고백합니다(65절). 시인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고난 덕분에 잘못 행하던 길에서 떠나 말씀을 배우고 믿고 지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율례를 가르쳐 달라고 간구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법도를 알았다고 고백하며 , 고난의 학교에서 더 배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앞에서 악인의 줄에 얽혔다고 고백했던 시인은(61a절) 이번에는 교만한 자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69a절). “그 마음이 살져서 기름덩이 같다”(70a절)라는 표현을 보아, 교만한자들이란 아마도 돈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즐거워하며, 오히려 고난이 유익했다고 고백하면서 (69b, 70b, 기절) 천천 금은보다‘주의 입의 법’이 더 좋다고 고백합니다(72절). 이는“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신 8:3)을 반영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말씀자체를 기뻐하고 그것을 따르려는 마음은 고난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고난은 이 세상과내 생명의 유한함을 깨닫는 계기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으십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채우신다는 말씀을, 이것이 훈련의 기간이라는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시인은자신이 하나님의 계명을 믿고 사랑하므로 좋은 명철 과 지식으로 가르쳐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는 고난당하기 전 에는 그릇 행하였는데, 고난을 당한 후에는 깨달음을 얻고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자신에게는 유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역경의 대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욥은 고난을 당한 후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고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