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 말씀

135th 약속 / 딤전 6장 6-12절/ 너 하나님의 사람아

주님의 약속 2021. 7. 11. 14:34

 

 

 

디모데는 AD 50년 이전에 바울과 합류했다. 그 무렵 디모데는 성년기를 막 시작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남자들은 사춘기 무렵에 성년기에 들어갔으므로, 이르게 보면 디모데는 십대 중반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바울은 AD 60년대 초반에 이 글을 쓰고 있으므로 그때 디모데는 20대 중반은 되었을 것 이며, 삼십대 초반이나 중반으로도 볼 수 있다. 당시 연소함 이라는 말은 사십 세까지 적용되기도 했지만 보통 29세 이하의 사람들에게 자주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장로가 아닌 사람이 어떤 모임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었다. 유대교에서도 사십 세는 되어야 오를 수 있는 직위가 많았다. 따라서 디모데가 한 교회의 지도자로 인정된 것은 매우 드문 경우였던 것으로 보인다.

 

(딤후 1:3-5)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3:1-2)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6절을 헬라어의 어순에 따라 번역하면 큰 이익은 자족하는 경건이다. 바울이 큰 이익'이란 표현을 문장의 첫 머리에 둔 것은 그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이익을 물질적인 것에 두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이익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바울은 여기서 큰 이익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지만 그것은 12절에서 말하는 영생을 가리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영생이 물질적 유익과 비교할 때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 그런데 그 위대한 이익을 얻는 길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경건이다. 비울은 자족하는 미음을 경건과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 돈에 대한 탐욕이 모든 죄의 근원이지만 탐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의 시작이다.

 

 

1/ 자족하는 마음 : 경건에 큰 유익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권면한다. 자족하는 마음은 진정으로 영혼에 변화를 겪을 때 생긴다.

(4:11-13)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래서 자족에 바탕을 둔 경건이야말로 진정한 경건이다. 바로 앞 절과 비교해 보면 거짓 경건도 분명히 있다. 이익의 방도가 되어 버린 경건이 거짓 경건이다. 이것은 신자가 항상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이에 반해 바울은 자족을 동반하는 경건은 큰 유익이 된다고 말한다. 그 유익이란 물질에 묶이지 않는 것이며, 육체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며, 사람에게 매이지 않는 것이다. 자족을 동반하는 경건의 유익은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다.

자족하는 마음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출생 시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고 사망 시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진리를 말한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인생이 허망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지만 사도 바울은 자족함의 근거로 사용했다

 

세상은 우리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는 돈 많은 것을 좋아하고 화려한 영광을 좋아하며 남들을 위압하는 권력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바울사도의 밀어 귀 기울입시다.

"우리는 이 세상이 아무것도 가져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수 없습니다. 명예가 그대를 찾아와야지, 그대가 이를 찾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한마디로 그대는 끝자리에 앉아 있다가, 그대를 초대한 사람이 그대를 더 영예로운 지리로 데려가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윗자리로 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 앉아 있는 자리에서 먹으십시오. 그대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니까요.“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39.2.12)

 

사도 바울은 자족과 관련해 대표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 을 언급한다. 이 두 가지는 인생의 기본요소인데 대부분의 사람에게 자주 걸림돌이 된다. 바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말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너무 없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매여 살면 안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611), 이는 나날의 양식을 위하여, 곧 충분한 양식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가 이 기도를 바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3:12-14)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히브리서 3,13) 그것은 "일용할 양식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살며 날마다 일어나고 날마다. 먹고 날마다 배고파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날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빕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 18.5.1901)

 

먹을 것과 입을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이는 탐욕에 대한 완전한 승리입니다. 탐욕의 아주 작은 조각 하나라도 우리 마음 안에 남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탐욕의 작디작은 불티 하나라도 마음속에 간직한다면 그 불을 끌 여력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듯이 먹을 것과 입을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이 더욱더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요한 카시아누스 규정집 7.25-29)

 

바울은 돈이 많은 부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욕구에 맹목적으로 집착할 때, 우리가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떨어지게 됨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가진 것 자체는 죄가 될 수 없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다. 이것은 기난한 자에게나 부자에게나 동일하다. 돈에 대한 탐심은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많은 근심 가운데 고통을 받게 한다. 비울은 여기서 많은 근심을 찌르는 가시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것이라 말한다. 돈에 대한 욕심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괴롭힌다.

재물을 탐하게 되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결국에는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찌른다. 사도 바울이 돈을 사랑함을 비판하는 이유는 오직 자기만을 위해 물질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정신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모든 비극은 이기적인 부의 추구에서 시작된다1221.

 

 

모든 악의 뿌리

 

탐욕이라는 벌레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나쁜 욕망은 홀로 사람 마음속 깊숙한 곳에 사는 벌레입니다. 질투와 탐욕이라는 벌레지요. 그러나 악마는 도둑입니다. 그는 선행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니 세상의 허세를 이용해 우리에게 아첨합니다. 사람이 하늘나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의 손에 금을 쥐여 주고 눈앞에 은을 갖다 보여 주며 목에는 보석을 걸어 줍니다. 참된 고귀함은 부에서 오지 않고 부를 경멸하는 데서 옵니다. 자신의 소유물을 자랑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재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의로운 사람임을 입증해 주는 증거입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교육자23.39.7)

최영 장군도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사람 백성으로 세상의 물질에 대해 그렇게 초연할 수 있는가?

 

어느 날 사탄이 열 개의 병을 들고 한 청년을 찾아왔습니다. 사탄은 열 개의 병 중에서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 있고 한 개의 병에는 독약이 들어 있는데, 꿀이 들어 있는 병을 찾아 마시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청년은 아무리 큰 액수의 돈이라 할지라도 생명이 걸린 일이라며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 러나 계속되는 사탄의 유혹에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병 하나를 골라 마셨습니다. 다행히 청년이 고른 병에는 꿀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청년은 사탄에게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청년을 다시 찾은 사탄은 이번에는 아홉 개중 하나를 골라마시면 처음 액수의 두 배로 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청년은 처음보다 쉽게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돈이 생기자청년은 허랑방탕한 삶을 살기 시작했고, 급기야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에 빠졌고 시시 때때로 사탄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남은 병들을 가지고 와서 청년에게 병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사탄이 어느날 남은 두병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결국 그는 두병을 앞에 두고 돈 벼락이냐, 죽음이냐는 마지막 인생의 승부를 거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는 마지막 병을 식은땀을 흘리며 마셨습니다. 그리고 기뻐했습니다.

내가 이겼다!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이제 어서 돈을 내 놔.” 승리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노인에게 사탄은 남은한 병을 마시면서 말했습니다. 후후, 처음부터 독약이든 병은 없었어. 그러나 너는 이미 돈이라는 독약에 죽어 가고 있었지! 지금까지 내가준돈의 대가를 이제부턴 네가 고통으로 지불해야겠다.”

돈을 얻음으로 모든 것을 얻은 줄 알았지만 결국 돈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2/ 피할 것과 취할 것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비울은 디모데에게 오직 너 하나님의 시람아!,라는 표현으로 권면을 시작한다. 이것은 디모데가 거짓 교사들과 달리 하나님의 참된 일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 교사들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비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가 피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 설명한다. 먼저 피해야 할 것, 여기서 이것들이란 4-10절에서 설명한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 되는 그러한 행위들이다. 그것은 교만한 미음으로 아는 척하면서변론과 논쟁을 일으키는 것과 부패한 마음으로 복음을 물질적 이 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는 것‘, 그리고 재물을 사랑 하는 탐심이다. 디모데는 이런 것들을 피해서 달아나야 한다.

반면에 그가 얻기 위해서 좇아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다. 그러나 이것은 손쉽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디모데는 이것을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은 힘든 투쟁을 통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 복음 사역자로 부름 받을 때 많은 시림들 앞에서 했던 신앙 고백을 디모데가 기억하고, 힘써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부른 것처럼, 우리 모두는 아무리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존귀한자들입니다.

치열한 영적 싸움 본문에는 하나님의 사람의 개인적인 네 가지 특징이 등장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교만, 무지, 다툼으로 대변되는 거짓 선생과 싸우고 물질에 대한 욕망과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갑니다.

둘째, 죄악을 피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합니다. 공의,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를 계속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경주자로서 영적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자입니다1212.

넷째, 경주에서 승리함으로 얻은 영원한 생명을 평생 꼭 붙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영적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피하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보다시피 바울 사도는 '포기하고 떠나라고 하지 않고 원수를 피하듯 피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금과 함께 달아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지 말고 금에게서 달아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금에게서 달아나게 하십시오. 마음을 쓰자면 마음에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욕심 없이 행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없이 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금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라면 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금의 주인은 금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금의 종이라면 금이 여러분에게 악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177,3.2)

 

훌륭히 싸우다.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박해를 당하다.

 

딤후에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 사람들이 박해받을 때 신심을 버리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 그는 믿음을 고수하라고 격려합니다.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디모데후서 3,14).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끝까지 신심을 지키며 살고 믿음 안에서 싸우기를 바라며 결론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아타나시우스 축일 서간집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