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th 약속 /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 시편 143편
실오라기만큼의 희망도 찾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눈을 크게 뜨고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철도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던 그 아이의 경우처럼 희망이란 사람의 어느 모퉁이에선가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다. 우리 삶이 준비하고 있는 이 깜짝 선물을 보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러니 부디 살지어다. 힘들고 고된 삶이라도 포기하고 말고 살아서 내 인생이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1/ 회개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2/ 책망
[3]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4]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3/ 기억
[5]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4/ 회복
[7]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9]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11]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12]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사람이 죽으면 집 떠나 묻히는 곳, 아득하고 길고 긴 어둠뿐이라, 황천 아래 한번 잠들어 버리면 천 년 만 년 지나도 깨어날 수 없다.”(진사인 『문선』 「구거상동문」 싯귀의 한구절)
오늘 시인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아뢴다.
[3]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무엇이 원인이며 누가 시인을 이처럼 처참하고 죽음의 침통한 현장으로 몰아넣었는지 이 시 자체에는 아무러한 설명이 없다. 다만 그 자신의 힘으로도 이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그의 친구나 다른 사람이나 그를 도와 이 위기에서 구원받게 해 줄 사람이 없다. 그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올 것을 믿었다. 이 간절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 7절이다.
“야웨여, 어서 대답해 주소서/나는 기진맥진해 버렸읍니다./나를 외면하지 마소서/내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가 아닌가 하옵니다"(7절).
이 시인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 넘어진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미 자기를 외면해 버렸고, 이제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음에 사로잡혀 간 자신인 것을 고백하고 있다.
역사 속에는 종종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신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그 때 우리는 그의 기적을 체험하고 그 영광을 목도한다. 그러나 또한 적지 않게 우리는 그의 침묵을 경험한다. 이 때가 그분이 얼굴을 숨기시는 시간이다.
그때 그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유 없이 우리에게서 그의 얼굴을 숨기시거나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그 분의 존전 앞에 상한 마음으로 나가야 한다. 솔직하게 우리의 참담한 심정을 쏟을 필요가 있다. 그 분 앞에 우리의 가식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이 상해 있을 때 아버지는 더 큰 고통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그는 숨어서 우리를 주목하신다.
우리의 참회는 단지 과거에만 시선이 머물러서 안 된다. 참회의 심정으로 우리의 미래의 소원을 그분께 아뢰어야 한다. 주께서 친히 인도하심을 구하자. 그는 곧 미소 지으며 당신의 얼굴을 보이실 것이다.
밤마다 그 밤이 마지막이라 생각하지만, 아침은 언제나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고 믿는다. 그것은 “새벽 마다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시니' 내가 주를 의지하옵니다./내가 걸어야 할 길을 알려주시니/내 자신을 당신께 맡기나이다”(8절)라는 그의 고백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새벽은 왜 다시 찾아 오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로 오는 것이다. 새로운 날 내가 걸어야 할 길의 방향이 어디며,그 길이 어떤 길인지 하나님의 가르침과 일러주심을 받지 않고서는 나의 하루 삶은 다만 절망이다. 아침은 그에게 새 삶을 알려주기 때문에, 그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말기는 것만이 자기 삶의 소원이라는 고백을 한다. 철저한 의지 신앙을 가지고 자신의 고난의 삶을 극복하고 있다. 이 시인이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게 됨은 세 가지 동사와 관계되었음올 5절에서 밝혀 준다. 즉 “기억과 묵상과 생각”이다: “내가 옛 일올 기억하고/당신의 모든 행하신 일을 묵상하며/당신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합니다.”
다윗의 인생에 찾아온 이 영적 쇠락의 시간은 칠흙처럼 어둡다. 그는 그의 영적 생활에 새 아침이 밝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따스한 온기가 그의 영혼을 비추고, 그의 삶에 하나님의 임재의 빛이 비치기를 바란다. 그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를 의뢰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와 친밀한 교제를 누리던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기를 구한다.
[5]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배 밑의 따개비가 달라붙듯이 인생에도 아무 상관 없는 것들이 축적된다. 하나하나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이 모이면서 우리를 게으름의 바다에 가라앉힌다. 그때,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의 타성을 깨고 들어와 반성을 불러 일으키고,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우리의 가장 중요한 필요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내 영혼이 마른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7]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우리는 금욕주의자처럼 제 힘으로 참아보려고 입술을 깨물어가며 기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능히 우리를 소생시키며 힘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자신의 필요를 아뢸 수 있는 정직함을 배운다. 이 시인은 칼뱅이 말한대로 “극도로 절박한 자신의 필요를 전차로 삼아, 그것을 타고 하나님께로 올라가고”(시편주석) 있다.
(7-8절) 묵묵히 주님 응답 기다리오니 밤 길어도 아침은 오고 말듯이 오롯한 마음으로 주님만 바라오니 주께서 저의 갈 길 일러주소서. 의지할 바 오로지 주님 손길이오니 원수들에게서 건져주소서
“그의 우편을 살펴보나 아는 자 없고 피난처도 없고 돌보는 자도 없었다”(시 142:4 )고 한 시인과 같은 사정에서 건져주셨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의 구원을 믿는 사람에게는 “저희가 나보다 강하다’’는 말이 변하여 “내가 오히려 저희보다 강하게 될 수 있읍니다”로 바뀌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마음의 기도란 일상의 많은 파도 밑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시냇물과 같은 것이다.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안에 살아가며, 고독의 한복판에서 우리 하나님께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기서 열린다.”
기도
하나님, 제 인생에 무거운 짐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맺어야 할 본질적이며 영원한 관계가 무엇인지 일깨워주소서.
오 하나님!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저 혼자서는 의미도 목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제 인생을 온전하게 만들 재료가 제 안에 없습니다. 제 자원(資源)이 바닥났습니다. 제 힘도 그러합니다. 이렇게 빈 손인 채 충만히 채우시는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저를 충만히 채우소서(에드윈 해취, ‘하나님의 숨결로 제게 불어 넣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