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2편/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주약교회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시132:3-5)
◈ 들어가며
노심초사(勞心焦思) 온통 마음을 쏟고 속을 태우는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이다.
고시에서는 노래한다. ‘“평생토록 얇은 얼음 디디듯 하였으니 이 마음 다 타들어간 것을 뉘 있어 알랴”
우리에게 신앙이란 혹은 종교란 무엇인가? 노심초사하는 때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함이 아닐까? 산책길의 벌 한 마리로 온통 마음이 그곳에 집중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런 문제상황에 애태우는 때에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환자가 의사를 대하는 것은 감정은 아닐까?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도와 주지만 그 두려움이 해소되고 나면 잊혀지는 그런 종교. 미칠 것 같은 흑암의 시간에는 절실했다가 밝은 태양아래 무사히 흘러가는 일상에서는 소원해지고 무미해 지는 종교.
그래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일상의 전쟁터인지도 모른다. 교회 회중석 보다는 생존경쟁의 참호 속에서 간절한 기도가 터져 나오기 쉬운 법이다. 본 시편은 다윗이 노심초사할 때에 어떻게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했는가’를 보여 줄 순종에 관한 시다.
◈ 본문
1. 시인이 기억해 달라는 다윗의 모든 근심하는 것은 무엇인가?
[2]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여호와께 대한 맹세, 서원함 : 여호와의 처소,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할 것이라고 한 것.
전능자의 성막 곧 과거의 한 사건, 언약궤에 얽힌 역사를 회상하고 있다.
언약궤는 길이122cm. 너비76cm, 높이 76cm 가량의 금을 입힌 나무상자로 양쪽 끝에는 천사 형상의 두 그룹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중앙의 속죄소 둘레를 감싸고 있다.
모세의 감독하에 만들어진(출25:10-22) 언약궤는 자기 백성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다. 시내산으로부터 광야를 지날 때 이스라엘과 동행, 가나안 정복 때부터 실로에 보관되었다. 전쟁중 블레셋에게 탈취되고 재앙이 닥치자(삼상4-7장)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졌다(삼상7:1-2). 그리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경축하며 예배한 자리에 두기 전까지 그곳에 있었다.
->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내 눈으로 잠들게도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도 졸게 아니하였다는 다윗, 내 삶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런 사랑과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있는가? 다윗은 이름 없는 벽촌에서 언약궤를 되찾아 그것을 이스라엘 삶의 중심에 두기로 결정했다.
2.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함을 듣고 난 뒤 반응은?
[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나무 밭에서 찾아 그의 성막 안으로 들어가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함.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8)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다윗의 기쁨의 행진의 정경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삼하6:14-15)
3. 시인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하신 어떤 약속을 붙잡는가?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시132편은 우리의 두발을 땅에 붙이고 있으라고만 하지 않는다. 발을 떼어 놓으라고 한다. 순종은 판에 박힌 종교의 틀 안에서 맴도는 지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희망찬 질주이다.
시온이 영원히 하나님의 성소로 인정받음은 다윗의 후손들이 이 성소를 중심하여 대대로 왕위에 올라 공평과 정의의 정치를 할 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단이 다윗에게 약속했다. 이 약속은 다윗의 집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드러낸다. 이 메시야는 원수들에게 수치를 입히고 자신은 면류관으로 빛나게 하실 분이다.
4.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거처를 삼고자 하여 하신 약속은?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한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18]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①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
-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이 바위에서 물을, 땅에서 만나를,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주셨던 광야시절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풍성한 섭리에 소망을 품는다.
②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을 옷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이 외치리로다
_이스라엘은 홍해의 끝자락에서 소고를 든 미리암과 여인들과 불렀던 모세의 노래, 여리고 성벽을 흔들다 마침내 무너뜨린 승전의 나팔소리에 기쁭의 노래를 부른다.
③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_밝은 빛을 내는 등! 빛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를 통해 빛을 주시는 주님.
④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_ 하나님의 은혜의 궁극적 결말은 하나님의 적들에게를 수치를, 하나님이 세운 왕에게는 영광이 임하는 것이다.
◈ 나오며
시인은 하나님 계신 성전이 있는 시온을 찾아온 사람이다. 시온이 어떤 곳인지 알면 알수록 믿는 이들에게 그곳은 더욱 은총으로 가득한 곳이다. 시온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그의 걸음은 더욱 굳세어지고 확신에 찰 것이다. 유한한 땅에서 거룩한 장소를 경험하고 유한한 인생이 거룩한 시간을 경험하는 것보다 복된 일이 어디 있으랴? 순례자는 자신이 다다른 성소가 어떤 연유를 통해 지금 여기에 이르렀는지를 되새기고 있다. 순례자 자신이 이곳에 이른 여정도 녹록치 않았겠으나 거룩한 시온의 역사 자체가 하나님의 마음이 쏟아져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신실한 이들의 마음이 녹아 있는 곳이다. 시인은 그런 대표적 인물로 다윗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는 순간 그는 성막에서 얼굴을 숨기신다. 그때 성막은 의미없는 천막으로 전락한다. 그가 거기 계시기에 그곳은 비로소 성막일 수 있다. 그래서 성막을 잃은 주의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임재를 사모하게 된다. 한때 성막에서 전능자의 영광을 경험했던 주의 백성들은 그 황홀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그는 예수로 하여금 이 땅의 성막이 되게 하셨다. 주께서는 성막의 영광을 체험하도록 공동체를 허락하셨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오늘의 성도들이 성막 곧 주의 집에서 주를 만나는 모습이 보고싶다.
우리는 매번 주기도문을 통해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시길’ 기도한다. 그것은 시온의 영광이며, 하나님과 격리되고 죄가운데 오염되지 구제받을 길 없는 이 땅에 오직 한분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도래되는 공의와 평화의 나라이다.
우리는 이 나라의 확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행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