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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th 약속/ 눅 10장 38-42절/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김광영 목사

주님의 약속 2021. 4. 18. 14:14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편이란 무엇일까?

어느 아버지가 먼 곳의 여행을 하다가 자신의 생일을 맞아 집에 들르게 되었다. 딸을 만나 안아도 주고 선물도 주고 마주하며 눈빛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딸이 숨어서 나오지 않고 한참을 있다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정성껏 짠 목도리를 내미는 것이다.

딸아 내가 네게 원한 것은 이 정성껏 짠 목도리보다는 바로 너 자신이란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명분으로 일을 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사실 주님과 마주하기를 무척 힘들어 한다.

 

메시지

 

1. 마음이 분주한 마르다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마르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이렇게 영접하는 것은 예수와 그들이 초면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 마르다는 마리아의 언니이자 나사로의 동생이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예수의 도움으로 살아난 일이 있으며(11,12), 마리아는 예수의 몸에 향유를 부은 일이 있는데 그 만큼 이들 가족은 예수와 각별한 사이였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일행을 영접하기 위해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다.

헬라어로 분주하다(페리에스파토)는 단어는 사방에서 끌어 당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손님맞이로 여기저기서 부르고 바쁘게 쫓아다닐 마르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마르다는 할 일이 많은데 도대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왜 그렇게 정신없이 바빴던 것일까? 그 이유는 준비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준비는 다름 아닌 식사준비를 하고 시중드는 일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유추해 볼 때 41.42절의 말씀을 보면, 그녀는 음식 준비도 하면서 마리아처럼 예수님 발 아래 말씀 듣고자 하는 열망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원문을 직역하면 그녀가 나를 도와주도록 그녀에게 말씀 하소서 마리아에 대한 책망, 예수님께 대한 원망, 접대에 분주한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밝히는 마르다의 마음이다.

마르다의 마음은 예수님을 위한 성대한 만찬의 준비, 자신의 수고에 무관심한 그분의 태도에 대한 원망, 그리고 주님께 대항 항의이다. 제 동생이 당신 발치에 한가하게 앉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그 아이에게 저를 도우라고 한마디 해주십시오.”그 밑에깔린 분노의 감정에 주목하라. 마르다가 분주하게 예수님을 섬기고 잇지만, 그녀의 동기에는 이기심이 스며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일한다. 분명 하나님을 위해서만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녀의 동기는 복합적이다.

 

2. 말씀을 듣는 마리아

 

그런데, 여기 한 대조적인 인물이 나온다. 그는 바로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였다.

예수님은 피곤한 여행길에 잠시 쉬실 만도 한 데, 그것을 뒤로하고 사모하는 자들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셨다. 이 가르침에 자리에 마리아가 있었다.

이 마리아가 이 바쁜 와중에 주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발아래 앉아 있다는 의미는 마치 제자가 스승의 발치에 앉아 교훈을 듣고 있는 모습을 말한다. 마리아의 태도를 묘사한 듣더니’(엔쿠엔)라는 동사는 미완료 능동태, 그녀가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지 않고 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리아는 경청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눈에 보이보이고 만질 수 있는 인성 속에 존재하시는 신적 위격 안으로 꿰뚫고 들어간다.

마르다 입장에서 보면, 마르다 라고 마리아처럼 예수님 말씀을 듣고 싶지 않는 것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 말씀 듣는 것 보다는 그분이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음식장만 하는 일을 더 중요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3. 마르다와 마리아의 갈등

 

여기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힘든 일은 내가 다 하는데, 일을 돕지도 않으면서 정작 행복해하고 충만한 쪽은 왜 동생 마리아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겁기야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리고,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마르다의 심경을 생각해보라. 동생에 대한 질투 그리고 그 일을 방조하시는 주님께 대한 서운한 마음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어떠했는가?

41-42절을 함께 읽어 보자.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마르다의 이름을 2번이라 부르셨다. 주님께서 얼마나 그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싶어 하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주님은 마르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 계시고 그 마음을 헤아리셨다. 하지만,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다는 것이다.

또 한 걸음 더 나가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는 것이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염려하고 근심하나

염려는 과도한 욕구로 인해 어지럽게 분열된 마음상태이다. 음식은 무엇을 준비할까? 좌석배치는 어떻게 할까? 지금 왜 마리아는 나를 돕지 않는 것일까? 의 생각으로 심히 분열되어있다. 근심으로 내면이 어수선하고 어지러웠다.

 

그런 마르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이 말을 공동번역에서는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라고 번역한다.

NIV"But only one thing is needed(그러나, 오직 한 가지 만이 필요하다)고 번역하였다.

 

당시 마르다가 하고 있던 음식준비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리아의 일이었다.

문맥적으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이었으므로 그 시점에 있어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좋은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은 마르다의 요청에 대한 거부인 동시에 오히려 마리아를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마르다가 주님께 집안 여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마리아는 마르다의 동생으로 소개될 정도로 묘사되지만, 마르다는 자기 집에 자기 손님을 맞아들이는 안주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안주인의 역할에 너무 충실하다보니, 예수님에게까지 명령투의 말을 하는 입장에까지 선 것이다.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이 말은 바로 명령어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마르다와 같은 심정이 되는 경우가 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는데(20:28), 주님처럼 시중들라고 교회 안에서 세워진 직무를 위임받은 자들이 자신을 주인인양 착각할 때가 많은 것이다. 마르다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섬기는 직분을 내세우며 자기가 슬쩍 주님의 자리에 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청지기 다운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벧전4:9-11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대접하는 일로 인해 원망할 이유가 많이 생길 수 있다. 혼자서만 봉사하는 것 같고, 일손이 딸릴 때, 혹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의 평가에 예민해 질 때 우리는 힘들어 질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봉사의 목적은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봉사를 한다면 작은 일 하나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하는 것임을 증거 해야 한다.

 

우리는 마르다가 되기 전에 먼저 마리아가 되어야 한다.

8:15에서 베드로의 장모의 섬김처럼, 예수께서 먼저 손을 만지시고 고치셔야 비로소 우리도 일어나 그분께 시종 드는 바른 모습을 같게 된다.

 

마리아는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는 마리아가 지금 주님으로 자신을 섬기도록 허용해 드리는 모습이다. 그는 주님을 섬기되 자기 위주로 하지 않고 주님 위주로 섬긴 것이다.

사실, 주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받기이다(10:39).

베드로는 요13:8에서 자신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에게서 발을 빼며 절대로 씻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모습은 주님 앞에 영성을 지도해 드리려는 모습이다.

주님은 그런 그에게 도리어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우리의 섬김이 진정한 섬김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께서 우리를 섬기시도록 해 드려야 한다.

우리모습이 마르다 처럼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지 않는가? 주님 앞에서 몇 가지만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좋은 편을 택할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하자.

 

 

Point

 

우리의 마음을 분열시키는 많은 일들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가 구해야할 한 가지 일은 무엇일까?

땅위의 것에 대한 지나친 염려가 영혼의 올무가 될 수 있다(13:22). 또한, 자기 열심히 주님을 섬기다가 시험에 들거나 도중하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시편기자의 고백을 들어보아야 한다.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사무엘 채드윅은 사단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성도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시대에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우리의 일상에서뿐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마르다 처럼 바쁘고 분주한 것에 끌려 다니기 쉬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마리아처럼 먼저 주님 발 앞에 앉는 것이다. 예배를 준비하는 일에 마음이 분주하여 진정 예배자의 자리의 서지 못하는 우리는 아닌가?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준비함에 마음이 바빠서 진작 섬겨줘야 할 사람을 목전에서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사무엘 채드윅은 영혼은 침묵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고독에 견줄만한 시험은 없다. 우리마음은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을 겁낸다.

어느 은밀한 곳에서 하루에 30분만 하나님과 함께 갇혀 있다면, 대부분 사람의 삶에 일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흥분의 도가니와도 같은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들은 거룩한 독서를 남는 시간에 할당하고 싶은 유혹을 많이 받고 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숨어서 독서하는 이의 침잠이 없다면, 그리고 외적 침묵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은 불가능한다. 쥐리유(jurieu)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혼이 하나님과 나누는 교감은 비밀을 요구한다.”

 

(119:97-100)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