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말씀 묵상

시편 125편 /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주님의 약속 2021. 4. 6. 07:41

 

‘500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없네 시조의 내용처럼, 세월의 무게속에 사람들은 바뀌어도 산천의 모습은 그대로 있는 것을 본다.

하루가 멀다하고 변화하는세상. 그리고, 그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불안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의 신앙도 그 세월속에 유혹과 시험으로 변색되며 믿음에서 낙오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가진자도 있다.

시인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같도다고 한다.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본문과 씨름하며

 

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과 같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1절 원문은 의지하는 자로 번역되어있지만, 현재분사형으로 어떤 사정 아래서도 그 의지 신앙을 버리지 않는 계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 우리는 언제든 악이 갑자기 우리를 덮치지는 않을까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나도 모르게 유혹에 빠져 넘어가게 될까? 항상 발부리만 살피고 있을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나의 전후를 두르고 (139:5) 계신다.

예루살렘은 구릉지대의 화분접시같이 움푹 들어간 곳에 위치하여, 주위를 둘러싼 언덕들이 방어요새 역할을 한다. 동으로 감람산이. 남사 서로는 힌놈의 골짜기, 북으로는 스코파스 언덕으로 둘러싸여 예루살렘은 안전하다.

이렇게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두르고 계심이다.

 

2. 우리의 안정감을 위협하는 것과 우리가 붙잡을 것?

 

우울감과 의심이다.

어느날은 믿음이 충만하고, 어느날은 의심이 가득하다. 들쭉날쑥한 삶의 요동에서도 불변의 사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감정을 믿기 거부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하자. 나의 안전은 하나님이 어떤분이냐에 달렸지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리지 않았다.

 

 

아픔과 고난이다.

 

우리 삶은 그리스 신화의 다모클레스이 칼아래 놓여있는 것 처럼 초조하다.

디오니소스의 신하인 다모클레스, 왕은 그의 머리위에 머리카락 하나로 칼 하나를 매달아 놓았다. 그 아래 앉혀져 연회에 참여하는 다모클레스는 얼마나 불안 하겠는가? 우리 삶에도 이런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고난과 초조가 우리의 평안을 위협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게 하신다고 한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을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주님의 통제권 아래서 시험은 조정되고 있음을 믿고 있다.

 

타락의 가능성

 

우리는 언제 우리가 주님을 떠나게 되어 타락의 길을 걷지 않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잃은 양같이 방황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끈득지게 찾으신다. 우리는 극성스럽다가도 의심으로 치우쳐도 하나님은 일향 미쁘사 우리에게 신실하시다.

배교는 어쩌다가 실수로 추락하거나 모르고 빠져드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지속적이며 결단에 의한 거절의 행위이다.

 


정곡을 콱 찌르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안전하게 요새에 둘러싸인 예루살렘 한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마지막 문장은 이제 푹 맘 놔로 해석될 수 있다.

33: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는 복이 있다.’ 우리의 안전은 그분의 책임에 있기 때문이다.

선한목자되신 왕을 모신자로 오늘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12:2)를 바라보며,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고, 그분을 찬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