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 말씀

103th 약속_ 여호와의 유월절/ 출애굽기 12장

주님의 약속 2020. 11. 1. 12:45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에서 흑암 재앙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던 이야기가 잠시 중단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피날레를 앞두고 돌연 뚝 끊어지는 것과 같다.

그 멈춤의 순가 깊은 고요 속에서 청중들은 장엄한 마지막 소리를 기다린다.

요한 계시록도 비슷한다.

어린양이 봉인을 하나하나 뗄 때마다 땅에 대한 심판이 즉각 시행되곤 했는데, 일곱째 봉인을 뗄 때는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했다고 전한다(8:1).

그 짧은 휴지부는 최후의 타격이 찾아오기 전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인 동시에 성찰과 돌이킴의 기회이기도 하다. 출애굽 공동체에는 먼 길을 떠날 채비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마지막 재앙이 내리면 바로는 즉시 히브리인들을 애굽에서 내 보리리라 하신다. 쫓아낼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러니, 백성들은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고 하신다. 과연, 애굽 사람들이 그런 요구를 순수히 받아들일까?

하나님이 뭔가를 우리에게 지시하셨다면, 그것을 수행할 능력도 함께 주신다.

 

113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애굽사람이 관대해서 패물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신적 공포에 질려있다. 애굽 인들은 히브리인들이 자기들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연이은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 바로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브리 남자나 여자를 종으로 삼았다면 일곱째 해에는 그를 자유인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때 주인은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면 안된다. 그가 또다시 종으로 전락하지 않을 만큼 넉넉히 주어야 한다.(15:12-15). 히브리인들이 애굽사람에게 은금 패물을 요구하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모세는 바로에게 최후 통첩을 날린다.

한 밤중에 하나님이 애굽가운데로 들어가서, 처음 난 모든 것이 다 죽을 것이다.

바로의 장자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까지 예외가 없다. 이 일로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애굽을 덮게 된다 재앙의 날 어머니들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들을 낳은 히브리 여인들은 그 아기가 죽임 당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애굽 땅에는 한 맺힌 여인들의 피울음이 배어있다. 그런데 그 땅에서 또 다른 피울음이 터져 나오려 한다. 바로의 고집은 애굽 땅을 장례식장으로 만들고 만다.

 

모세는 장자 죽음후, 일어날 일들도 예견한다.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따르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118.

관계의 역전이다 모세앞에 내려와 절하고, 한사코 붙잡던 그들이 이제는 제발 나가달라 부탁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이다. 장자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경험되어야 한다. 후회는 너무 늦게 찾아온다. 심연으로 추락하기 전에 돌이키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아집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불신앙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긴다.

 

하나님의 시간은 다가온다. 더딘 것처럼 보여도 반드시온다. 그날은 누군가에는 구원의 시간, 어떤 이에게는 심판의 시간이다.

9번의 재앙을 겪고도 바로는 완고할까? 어쩌면 그만한 위기로 무너질 제국이 아니라는 오만함 때문이다. 수천년을 이어온 나라, 수많은 위기를 극복했는데, 이번도 지나가리라는 착각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사건, 이스라엘 해방이 벌어질 그 달을 달의 시작, 한 해의 첫달이 되게 하라 하신다.

이스라엘력으로 아빕월인데, 태양력으로 3~4월경이다. 애굽과 팔레스타인 땅과 위도가 비슷한 나라에서는 봄철이다.

아빕월 열흘째 이스라엘 모든 가족은 어린 양이나 염소 한 마리를 선택한다. 흠이 없어야 하고 일년 된 수컷이어야 한다. 굳이 수컫이라 함은 애굽 땅에 닥쳐올 장자의 죽음을 암시한 것이다. 다른 이유는 암컷은 봄이 되면 새끼를 나아야 한다.

 

어린양은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잘 간직해 두었다가 열 나흩날 해질 무렵에 잡는다. 선택에서 도살에 이르기까지 나흘의 간격이 있다.

도살당할 양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에 잠길까? 나의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덕분에 유지된다는 것을 절감한다.

어린 양을 잡아 피는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했고, 고기는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는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어 반죽을 부풀게 할 수 없을 정도의 급박한 정황을 상기시킨다.

쓴나물은 애굽에서 겪었던 극심한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지팡이 잡고 급히 먹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의 밤 넘을 유()’ ‘넘을 월()’, 이렇게 심판이 그들을 넘어간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오늘 본문은 출애굽 사건이 막 감행된 시점에 모세가 그 백성들에게 신신당부하는 내용이다.

놀랍게도 모세는 종살이된 된데서 해방된 기쁨도, 저들이 누리게 될 황금빛 미래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자유로의 긴 여정 속 겪게 될 각종 어려움도 말하지 않는다.

단 한가지. 출애굽 공동체에서 3번이나 거듭 당부해서 말하는 것,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며 자손들에게 잘 가르치라는 것이다.

 

당신들은 이집에서 곧 당신들이 종살이하던 집에서 나온 이 날을 기억하십시오”(3a)

 

 

 

이 절기를 지킨 것은 아빕월 열나흘 날 해질 무렵이다.

아빕이라는 말은 곡식의 ’, 즉 이삭을 뜻한다. 이 맘때가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달이었기에 이 명칭이 붙혀졌다. 그달 열나흘에 사람들은 흠없는 일 년된 수양이나 새끼를 골라두었다가, 해질 무렵 잡아 그 피는 받아다 그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우슬포 묶음에 묻혀 발랐다.

양의 머리, 다리, 내장 모두 불에 구워야 했고, 뼈는 하나라도 꺾어서는 안되었다.

쓴나물과 누룩없는 빵을 함께 준비한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 음식을 먹었다.

식사전, 아이들은 유월절 식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의식인 하가다를 따라 아버지에게 4가지 질문을 한다.

오늘 밤이 다른 밤과 다른 까닭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이집트의 노예였던 시절을 기억하라

우리는 수치스러운 과거는 한시라도 빨리 잊거나 자식들에게 숨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자신의 부모들의 족보를 날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수치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가 합류할 이야기는?

왜 그런 수치런 기억을 상기시키는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선조들의 이야기, 출애굽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함이다.

알래스테어 매킨타어는 말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이야기, 혹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로 존재하는가?” 라는 보다 앞선 질문이 해명될 때에만 비로소 대답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녀 세들에게 들 줄 이야기를 갖고 있는가?

예수 믿었더니 모든 게 잘 되더라는 이야기 말고,

예수를 믿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고 고생했는지의 그 고생담.

신앙 때문에 따돌림받고 오해받은 이야기.

아브라함 조유아 헤셀은 유대인 교육 과제를 몇 가지로 요약한다.<누가사람이냐>

1) 교육은 학생에게 살아 있는 존재의 신비와 놀라움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물 한잔을 마셔도, 과일 하나를 맛보아도, 그것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온 우주가 참여해 마련 한 것임을 아는 것이다.

놀람을 가로 막는 것,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세상한 당연한 것이 있는가? 놀랄 줄 모르고 경탄할 줄 모르는 이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끔찍하다.

 

2) 자신이 무한하게 값진 존재이면 동시에 모든 것을 빚으로 얻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경쟁에 시달리며 사는 많은 이들은 자존감을 갖지 못한다. 경쟁에서 실패는 곧보라 온새으이 실패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다. 잘났든 못났든 우리는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3) 시간 속의 거룩함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19:2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일상의 모든 순간 하나님의 현존을 자각하고 살 때 우리 삶은 거룩해 진다.

 

4) 축제의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으로 무엇을 보여주나?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물로 포도주 만드신 사건이다. 주님 계신 곳에는 삶이 즐거운 축제로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혼자는 축제하는 사람없다. 공동체 속에서 다른 이들을 삶속으로 맞이들어고 우리자신도 기꺼이 손님이 되려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기능을 갖출 사람이 되도록 하고 참 사람의 길을 가도록 돕지 못한다면 교육은, 똑똑한 사기꾼을 양성할 뿐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의 겪는다.” 4:19 고 하였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인간성의 황무지로 변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황무지에 씨앗을 뿌리는 이들이 필요하다. 경쟁과 출세의 이야기가 압도적인 세상에서, 사랑과 돌봄과 섬김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있을 때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