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4편 /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내게 근심이 많을 때 당신의 위로로 내 영혼이 기뻐하오리다(19절)
여기서 “근심”이란 말(‘사아프’란 원어는 걱정과 염려로 마음이 헷갈린 상태를 말함)은 성서에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악인들이 지배하는 시대에 사는 정직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염려와 걱정이다.
선지자적 비관주의가 있다. 태평성대라고 악인들이 말하는 시대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얻어맞아 시대의 죄성을 폭로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시인을 근심케 하는 자는 교만한 자, 악인, 악을 행하는 자, 악한 자이다.
이들이 일은 지껄이며 오만히 말하며,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기업이 된 자들을 핍박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여호와는 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다. 법을 세우며 악한 권세를 부리고 있다.
이 시인은 이 사람들이 다스리는 시대에 악인들 틈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근심이 떠날 수 없다. 순간 마다 긴장이요, 순간마다 이 악인들이 쏘는 악담과 모독이 화살처럼 이 시인의 심령에 꽂힌다. 시인은 이 가운데 그의 사정을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소서”(1절)
암담한 현실에 빛을 주는 분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밖에 없다.
악인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모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8절)
하나님은 인간이 하는 일을 보고,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신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9절)
시인이 악인의 함정 속에서도 피할 수 있음은 다만 공의로 판단하시고 그의 백성을 가까이 지켜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함이라(16,17절)
그의 찬송은 하나님의 위로에 집중된다.(19절)
“내게 근심이 많을 때 당신의 위로로 내 영혼이 기뻐하오리다(19절)”
이사야가 포로 가운데 동족에게 “위로하라 위로하라”고 외친 것도 하나님이 그의 원수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도 찬송한다.
(고후 1:3-4)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_ 김정준, 『시편명상』, 한국신학연구소, 1996, 292-294쪽
“하나님의 자비의 손 안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은
그분의 공의의 손에서 결코 건짐을 받을 수 없다.”
_Matthew Henry
●●●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8,9절)
도입(1-2절) 여호와를 향한 간구와 탄원들
[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A(3-7절) 현재의 재앙에 대한 애가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B(8-11절) 바보들을 꾸짖음
[8]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10]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B’(16-19절)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보장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A’ (20-23절) 여호와는 나의 요새시요
[20]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어울리리이까
[21] 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3]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시편기자는 사악하고 광포한 자들을 물리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고 있다. 저들은 비역하고 포악한 수법으로 정직한 자들을 박해하였다. 시편기자는 여기서 자국 내의 원수들을 언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불의한 지배는 주의 백성들에게 대해서 밖으로 이방 나라들로부터 받은 온갖 침해 만큼이나 괴롭고 가혹한 것이었다.
악한 사람들로 인해 부당한 고난을 당하는 신자들은 항상 올바른 반응을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 올바른 반응이 나온다. 이것은 박해를 견디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악한 자들의 공격을 당할 때 신자들은 주님을 불러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그들의 고통을 갚아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경건한 자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 있을 때 주님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일어나서 원수들을 심판하시도록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원수 갚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결백한 자들에게 저지른 그들의 악을 갚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시편은 점점 더 소중하게 될 것이다.
어리석음에 대한 세상적 정의와 성경적 정의는 현저하게 차별화된다. 세상에서는 자기 이익을 잘 챙기고 약게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때로 이런 사람들은 악을 행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의 사고구조에는 지혜의 도덕성이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과부와 나그네와 고아를 멸시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어리석다고 하신다.
세속적으로 지혜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악을 행하는 것을 보신다. 그러나 인생은 하나님이 보시지 못할 것으로 알고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다. 하나님을 잘 모른다. 전지하신 그분은 거룩하신 눈으로 인생을 주목하시고 심판을 예비하신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의 법을 알고 주의 교훈으로 가르침을 받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그의 인생에는 도덕적인 잣대가 분명하여 원칙을 준수하며 양심의 법을 어기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양심의 깊은 곳에 평안을 내리시고 이들이 걷는 인생 여정에서 환난을 벗어나게 하신다. 지혜로운 사람에게도 환난의 위기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이야말로 시험의 때인줄 알고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미끄러지는 우리의 발을 주께서 붙드시며 주의 위로가 우리 영혼에 충만할 것이다. 의를 행하려 하여 고독하거든 우리의 영혼의 산성이시고 피할 바위이신 주의 그늘아래 머물러 쉴 줄 알아야 한다.
이 시편의 11절은 고린도전서 3:20(욥 5:13과 함께)에서 인용되었으며, 로마서 11:1-2에도 암시되었다(삼상 12:11과 더불어)
(고전 3:19-21)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욥 5:12-14) 『[12]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13]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14] 그들은 낮에도 어두움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롬 11:1-2)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삼상 12:10-12) 『[10]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 [12]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20절에서, 시편기자는 이제 이 시편을 시작할 때의 위치로 돌아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재판장이시라고 선언한다. 그는 모든 악한 재판장과 절교한다. 악한 재판장은 자신의 권력을 부당히 사용하며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압제한다. 시편 기자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교제하리이까 묻는다. 21절이하에는 이 악한 통치자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고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리라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않는다. 오히려 시편기자는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견고한 동맹을 선언한다. 주님은 그의 산성과 반성이 되셨다. 하나님만이 그에게 완전한 보호를 제공하신다.
시인은 8절에서 어리석은 이들이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오경웅은 그들이 어떻게 득인(得仁)하랴?고 묻는다. 득인은 구인득인求仁得仁의 줄임말로 보면되겠다. ‘논어’의 ‘술인’편에 제자가 공자에게 백이 숙제가 굶주려 죽으면서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을까요? 라고 묻는다. 공자는 대답하길 “인을 추구하다 인을 얻었는데 무슨 후회와 원망이 있겠느냐” (구인득인 우하원)이라고 대답하였다.
구인득인은 진리를 추구하는 중에 끝내 진리에 이르고 참에 다다른 것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알며 깨닫는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길을 찾는 것이 곧 길이며 참을 찾는 것이 곧 참일 따름이다. 그렇게 찾을 뿐 아니라 겸손히 고백하는 중에 깊어진다. 뉘 감히 이르렀다고 할 수 있으랴? 그러나 오늘날처럼 혼란한 시기에는 길을 찾았다고 큰 소리로 외치는 이를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