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메시지

요한복음 14장 1절 _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주님의 약속 2020. 9. 6. 12:30

 

 

 

● 찬송 :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 말씀 : 요한복음 14장 1절

● 설교 : 맡은 자
● 찬송 :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주약교회 가족 여러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연일 계속되 코로나로 인한 우리사회의 아픈 이웃들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또한, 최장기 장마와 폭우를 보내고 태풍 ‘마이삭’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또 다른 태풍 ‘하이선’의 북상 소식이 전해옵니다.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도미노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는 시점입니다.
우리교회는 비대면(언택트)시대 온라인영상예배(온택트)와 가정예배로 코로나의 종식을 당기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이번 주는 가정예배로 드리시고, 차후에라도 주약교회 설교영상을 경청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곧 다시 춤추게 하소서

 

우리는 지금 많은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의 졸업식, 조카의 결혼식...
날마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나누던 대화도 사라졌습니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거대한 침묵을 강요합니다.
그 침묵이 낳은 것은
일자리 상실과 레스토랑과 거리에서 누리던 일상생활의 종말입니다.
우리는 기다립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생명의 하나님이신 주님이 죽음의 세력을 물리칠 것입니다.
그분의 신실한 백성들의 삶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기다리면서, 다시 시작될 춤의 다음 동작을 연습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침묵을 이기실 것을 압니다.
생명의 주님이 이기실 것입니다. 아멘.

 

_월터 브루그만,「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신지철 역, IVP, 83쪽

 

이번 주일도 각 가정에서 예배서식을 가지고, 찬송하고 말씀나누고 기도합니다. 차후에는 상황을 주시하면서 예배를 어떻게 할지 다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9월 5일
김광영목사

 

 

 

 


제목: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주님이 제자들을 떠나시려한다. 제자들은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근심에 사로잡혔다.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내일 처형될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들을 돌아보시는 분이다. 또한 그는 우리가 아픔을 호소하기도 전에 우리 마음의 아픔을 헤아리시며 위로하시는 분이시다.

 

1/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왜인가? 대답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는 것이다. 그분은 “자 근심거리를 잊고 다함께 차차차! 좋은 것만 생각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요16:33)라고 말한다. 주님은 그들 자신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을 정면으로 맞서게 하신다.
하지만, 세상의 소리는 경박한 낙관론과 비관적 우울함을 가지고 있다. 복음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선언한다. 그것은 겟세마네동산, 재판, 잔혹한 십자가의 처형, 찢긴 몸, 무덤에 갇힘의 고통과 직면하는 주님이 들려주는 말씀이다. 고난이후에 부활과 영광이 있으리라는 말씀이다.
“나를 신뢰하라”는 것, “내게로 와서 네 근심거리들을 내게 고하라. 하나님에 관한, 기도에 관한, 그리고 네 연약한 의지와 실패에 관한 모든 어려움을 내게 고하라”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에 말씀하신다. 성경은 우리의 어려움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해결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는 여러분을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를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그를 믿는자를 도우신다.

 

2/ 하나님을 믿으라

 

이것이 출발점이요 열쇠이다. 병에 걸린 사람은 대체로 질병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그의 관심사는 그 질병으로 감내해야 하는 괴로움이다. 그 환자의 관심은 늘 자신의 ‘증세’에 있다.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성경은 단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단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건강상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다. 행복, 기쁨, 평강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그 무엇을 우리의 유일한 목표로 구한다면 행복해 질 것이라는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우리는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는가? 우리가 만든 ‘신’은 반드시 우리를 ‘배신’한다.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섬김으로,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의존은 때때로 우리를 노예상태로 이끌지만, 하나님에 대한 의존은 자유로 이끈다.
또한, 그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 말씀하신다. 시편기자는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에 고백한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그분의 약속을 믿으라는 것이다.


3/ 나(예수님)를 믿으라

 

요한사도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선언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영원하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요1:14) 거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선언한다.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14:8)고 할 때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절대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리웠다. 구름이 꽉 끼여 태양빛과 우리를 갈라놓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한 길을 내셨다. 그리스도가 우리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치루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가기위한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우리 마음이 불안으로 혼란스러울 때, 근심이 사로잡을 때 그분께 나가자.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6:37)고 말씀하시는 그 분께로.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한’ ‘모든 지각에 뛰어난 그 분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근심의 세상, 고통의 세상 한 복판에서도 우리가 염려의 포로 불안의 포로가 되지 않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맞서 이길 수 있는 이유. 바로 주님의 말씀 때문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비대면 예배를 위한 주일예배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