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th 약속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였더라면; _시편124편
순례자의 노래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세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 길 다 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들에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지라도
오 내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시편도 순례자의 노래이다. 그 노래중 다섯 번째 노래이다. 순례의 길은 생생한 은총을 체험하는 장이다. 일상을 살아갈 때는 늘 익숙한지라 새로운 것이 없이 당연하고 마땅한 것들, 습관화된 것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길 위에 서면 익숙하거나 당연한 것들은 더물이다. 낯선 것들이 다가오고 순간순간 어떻게 응해야 할지를 여쭙기도 하고 결단해야 한다. 우리와 연약함과 어리석음도 생생하며 악의 유혹과 시험도 생생하다. 어리석은 선택이 낳은 결과를 충분히 맛보았고 유혹에 넘어졌을 때의 쓰라림도 견디기 쉽지 않다.
그러니 지혜를 구할 수 밖에 없고 주님의 개입을 요청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청하고 구하는 중에 임재한 그분의 은총의 손길보다 더 생생한 것이 있던가? 그러니 시인의 고백대로 날마다 새로이 태어난다. 새로운 생명을 날마다 받아 사는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고 잘 풀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감사하거나 노래하기 쉽다. 하지만, 곤경에 처하여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다고 확신에 찬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 본문과 씨름하며
1. 시인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는가?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의심에 빠지고 신앙생활에 위기를 당한 이들이 우리에 대해 과연 하나님이 계시냐고 물어 올 때가 있다. 우리는 그때 하나님의 계심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하며 설명하려고 애쓸 때가 많다.
마치, 고장난 물건을 가지고 회사의 신뢰성에 대해 공격을 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에게 회사의 신뢰성을 심겨 주려는 After Service 직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시편 124편의 기자는 시인은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할 뿐 그분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고 변명하지 않는다. 그는 1,2절에 우리 편이라고 하고, 8절에서는 우리의 도움이라고 노래한다.
시편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이라는 표현을 두 번씩이나 반복한다. “만일”이라는 가정법으로 인생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감사의 치유요법이라 할만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인생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가장 확실한 도움의 방편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가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한 인생의 그림을 그려준다.
2. 시인은 하나님이 우리편이 아니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것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의 도우심은 두가지 삽화로 묘사된다. 산채로 잡아먹힐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 그리고 홍수에 쓸려갈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삽화이다.
첫 번째 그림은 무시무시한 용, 또는 바다의 괴물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용은 총체적인 악이다. 거대한 용과 막닥뜨린 농부는 옴짝달짝 못한 채 얼어붙는다. 피할 길이 없다 용의 철갑 같은 피부, 불을 뿜는 아가리, 사납게 후려치는 꼬리 그리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식성과 탐욕은 죽음이 임박했을을 알리는 신호다.
두 번째 그림은 홍수로 인한 갑작스런 재앙을 묘사한다.
중동의 시골지역에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물길들은 복잡한 중력 작용에 의해 모두 연결되어져 있다. 갑작스런 폭풍으로 작은 협곡에 물이 차면, 이내 다른 협곡으로 물이 흘러들고, 순식간에 급류성 호우로 돌변하다. 이 지역에 우기마다 예고없이 닥치는 그러한 재해보다 더 큰 위험은 없다. 모든 것이 잘 풀리고 행복하여 장례를 설계하는 한순간이 지나면 이내 온 세상이 재난으로 뒤덮일 다음 순간이 찾아온다.
세차게 덮쳐오는 큰물결이다. 이백의 시 ‘분도 산수’에 노래한다. “놀란 파도 치솟거늘 어디로 가려하나 외로운 배 한번 가면 돌아올 날 모를레라‘
3. 시인은 또 어떤 이미지를 끌어 들이고 있는가?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하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우리 혼이 새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남과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어떻게 모든 어려움을 비켜가게 하셨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큰 어려움에 처하였얼때 버려지지 않고 어떻게 큰 도움을 입어 빠져나왔는지를 말한다.
우리는 성도에게 고난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성경은 성도에게 고난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심을 받는다고 했다. 맹수의 이빨과 수마의 할큄과 옭아매는 올무도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큰 역사를 드러낼 뿐이다.
4,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어려움은?
우리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되겠지 라고 말하는 경박한 낙관론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로 이제 모든 것은 절망적이고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비관론자에 둘러싸였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이루시리라고 말하는 것, 상실, 거절의 고통 앞에서도 참 소망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사랑하기보다 경쟁에 익숙한 모습, 우리가를 어떻게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궁리하기 보다 내 분야에 성공하려는 본능과 야망에 따르기가 쉽다. 이모든 것은 우리가 맹수의 이빨과 홍수의 위험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우리를 도우시는 개인적인 하나님으로 언결하고 있다. 시편 124편은 고통스런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가서 그 곳에서 우리편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역사의 고통들, 개인적 갈등으로 인한 불안과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 본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 편에 계시며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본다. 공포스런 용이나 수마의 할큄, 옭아매는 올무도 자세히 들어댜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다.
역겨운 세상이라 해도 우리에게 찬양이 있다. 어지러운 세상 한 가운데서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한없는 자비와 구원의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을 향해 빛을 따라 여행하는 자들이다. 우리의 생애는 우리가 겪는 위험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빚어진다.
※ 정곡을 콱 찌르며
그 가운데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다. 우리의 생애는 우리가 겪는 위험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빚어지는 것이다. 매일 매순간, 우리는 믿음의 사선에 서 있다. 거의 무엇이든 과학적 통계아래 두려는 세상에서 눈을 마주친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는 그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기를 고집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큰 모험이다.
시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는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도움이 그분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세상에 눈 감음으로 하나님에 대해 눈 뜰 수 있다. 세상이 커 보이면 하나님은 작아 보이고, 하나님을 제대로 크신 분으로 볼 수 있는 영적 시각이 있을때 하나님을 크신 분으로 볼 수 있다.
악의 세력에 홀로 맞서는 사람에게는 승산이 없다. 그러나 사실 어느 누구도 홀로 맞설 필요가 없다. 주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서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확언해 주시지 않았는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절박한 묵상의 과제는 여호와가 우리 편에 계신가가 아니라, 링컨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여호와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가까이 하면 그분은 기쁨으로 우리를 가까이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의 시간을 그분을 알고 그분을 섬기기로 한다면 인생은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약속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명대사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소년이 원망어린 목소리를 외쳤어요
“왜 나쁜 기억은 지워졌는데, 왜 나는 행복해지지 못한거죠?”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처절하게 후회했던 기억, 남을 상처주고 또 상처받았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자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더 유연해 질 수 있지. 행복은 바로 그런 자만이 쟁취하는 거야”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말한다.
“고통을 서둘러 제거하려 들지 말라, 그것은 바로 고통 속에 있는 자아를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고통을 직면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앞에 솔직하게 투명하게 아뢸 수 있다. 그리하여 고통하는 자아와 마주하고, 그것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셈세한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의 크신 이름을 송축합니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당신이 베풀어 주신 도움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힘을 제게 나누어 주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제 안에 역사하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 편이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참고도서
이동원, 「묵상의 샘」, 압바맘마, 2014년
유진피터슨, 「시편으로 드리는 매일기도」, 이철민 옮김, 홍성사, 2002년
유진피터슨, 「한 길가는 순례자」, 김유리 옮김, IVP, 2003년
오경웅, 「시편사색」, 송대선 옮김, 꽃자리,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