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_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냐? _마 2장 1~12절
님이 오신다
님이 오신단다,
길 닦아 예비하자
내 집에 오시는 님을
날 보러 오시는 님을,
그저 어찌 맞느냐?
높은 것 낮추고
우므러진 것 돋우고
굽은 길을 곧게 하고
지저분한 것을 다 치워
님이 바로 오시도록 하자
님을 기다린다면서
그저 잤고나,
이것저것을 온 방안
허투루 늘어놓아
그저 앉으실 곳도 없이 했구나.
어서어서 모셔야 할 님
더러운 길에 왜 더듬게 하며,
맑고도 거룩하신 그의 몸을
헤뜨린 이 속에 어찌 맞을꼬?
오, 내 맘이 급해.
쓸자, 닦자, 고치자,
물을 뿌리자,
묵고묵고 앉고앉고
이 먼지를 다 어찌하노?
언제 이것을 아름다이 하노?
자리 위엔 무슨 때가
이리도 꼈느냐?
천정의 거미줄은
누가 치느냐?
이리도 더러운 줄을 나도 몰랐지.
뜰에는 무엇이 저리도 많아
발도 옮겨놀 곳이 없고
앞길에는 돌이 드러나고
다리가 무너졌으니,
저거는 누가 놓아주느냐?
아이구 님이 오시네!
저기 벌써 오시네!
이를 이를 어찌노,
어딜 들어오시랄꼬
이 얼굴, 이 꼴, 이 손은, 아이!
이 애 이 애 걱정 마라,
나도 같이 쓸어주마,
나 위해 쓸자는 그 방
내가 쓸어 너를 주고,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쓸자 닦자 하던 마음
그것조차 맘뿐이고
님이 손수 쓰시고
나까지도 앉으라시니,
재 자랑이라곤 없소이다, 참 없소이다.
밝히자면서 봇 밝힌 방
저절로 밝아지고,
맑히자면서 못 맑힌 맘
나중엔 맑아졌으니
내라곤 없소이다, 님 곁에만 사오리.
함석헌
1. (1-3절) 소동하는 성
박사들이 동방으로부터 유대 베들레헴에 왔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냐?"
그러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다.
먼저, 우리는 동방박사들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박사들은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한다.
이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동방의 박사들은 이방종교를 믿는 점성술사로서 그들의 예언 능력은 헬라와 로마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동방(아마도 메소포타미아, 오늘날의 이라크로 추정됨)의 박사들이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로 별점이 제공하는 식의 ‘해석’과 결합된 정교한 천문학적 관찰에서 팔레스틴 지역에 중요한 왕이 탄생을 확정하고 온 것이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의 순간에 당황해 하고, 전혀 메시아를 찾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동방에서 부터 먼 곳까지 여행을 온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도착했을 때,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들은 ‘소동’하였고, 헤롯의 마음에는 ‘살의’가 일어났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구세주 왕의 탄생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들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먼 여행길에 올라 이렇게 왔건만, 진작 유대 땅 예루살렘은 소동한다.
우리는 과연, 주님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듣고 또 연구하는 우리는 주님을 만나지 못한 채 무늬만 예수쟁이는 아닌가? 만약,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신다면,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환대하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유대땅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처럼 소동하며 당혹스러워 할 것인가?
2. (4-8절) 탐문하는 헤롯
소동하는 당혹했던 헤롯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질문한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시겠느냐?”
그들은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며 유대 땅 베들레헴의 지명을 안내한다.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의 나타난 때를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라고 한다.
우리는 서기관들이 인용한 선지서가 미가 5:2인 것을 알게 된다.
메시아는 다윗의 직계 손으로 베들레헴이 그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은 헤롯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16km 반경 내의 작은 마을이었다.
우리는 서기관들의 아주 무관심한 태도를 본다. 그들은 과연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헤롯의 강압적인 폭정에서 자신들의 기다림을 드러내지 못한 것일까? 이 서기관들과 또 제사장들은 결국 그 왕 되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의 주축임을 보게 될 때 그들에게 메시아는 거북스러운 존재였음을 생각케 된다.
우리는 질문한다. 그렇게 성경에 박식한 이 당대의 엘리트들이 왜 그리스도 메시아의 탄생에 무관심한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과연 성경에 진리에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종교적인 안락함과 자신의 기득권에 관심이 있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급진적인 삶의 회개와 전환을 요구할 때가 많다.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며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시며 그 앞에 종된 자로 우리 삶의 태도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 또한 서기관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머리로는 그리스도를 알지만, 그의 탄생 앞에 경배하지 않는 순종과 헌신이 없는 주일예배를 드리는 하나의 종교인일 뿐인 것이다.
또한, 동방박사들에게 자신도 그리스도께 경배하러 가리라 말하지만, 나중에 보면 실상은 군사들을 풀어 죽이러 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기가 왕인데, 또 유대 땅에 누가 왕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을 위협하는 어떤 것이든, 심지어 약속된 메시아라 할찌라도 죽일 궁리를 하는 것을 보게된다. 우리 속에 이런 헤롯의 모습은 없는지 이 새벽 깊이 생각해 보자. 내 삶의 주인으로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것이 바로 헤롯의 태도가 아닌가?
3. (9-12절) 경배하는 박사들
박사들은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별이 머물때,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한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마리아가 함께 있음을 보고, 엎드려 경배하며 보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
그들은 진실로 왕을 경배하는 자들이었다.
우리가 주목해 보게되는 것은 그들이 꿈에 헤롯에게 지시함을 받아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간다. 헤롯이 그들의 왕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이 그들의 왕이었기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보상을 해줄 수도 있고, 혹은 위협할 수 있는 헤롯이지만, 그들의 그 뜻을 따르지 않았다.
마태복음 2:1-12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냐?’
동방의 박사들과 헤롯왕
김광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