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 말씀

88th 약속_맥추감사주일_시편77편

주님의 약속 2020. 7. 5. 15:55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시 7711

I will call to mind the deeds of the LORD;

I will remember your wonders of old.

 

 

 

인생을 살다 보면 잠들 수 없는 밤의 경험을 갖게 됩니다. 인생의 일이 내가 계획한대로 전혀 풀려지지 않습니다. 때로 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벽 앞에 서서 절망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어둔 밤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신음이요 탄식일 뿐입니다. 이 노래는 위로 받기를 거절한 슬픈 멜로디로 만들어 집니다.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77:6-7)

 

이런 어둔 밤을 견디고 지나는 비밀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경험한 밤보다 훨씬 더 어두웠던 옛날의 밤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밤에 주께서 행하셨던 기적을 기억해내고 묵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그분의 기적의 손을 볼 수 없어도, 그분의 기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우리는 동일하게 함께 하시는 그분의 임재를 기억해 내어야 합니다.

 

인생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성도들은 용기를 꺾어버리는 절망의 어두움 속으로 추락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이러한 낮은 계곡들은 우리를 황폐한 낙심의 계절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그러한 음침한 골짜기에서 면제될 자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가장 강한 성도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침체기에 의인들은 하나님이 과거에 자기 백성들에게 허락하셨던 승리에 다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자기 자신을 훈련하고 단련해야 한다. 성도는 무서운 고통의 시간을 지날 때 지난 세대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묵상함으로써 믿음을 쌓고 영혼을 단련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한 과거에 대한 묵상은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며 짓눌린 심령에게 용기를 준다. 하나님은 이전에도 능력으로 역사하셨고, 오늘날에도 그러한 역사를 온전히 행하 실수 있으시다.

그러한 의도의 묵상이 아삽의 시인 시편 77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편은 극심한 개인적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과거의 승리를 묵상함으로 큰 위로를 얻은 후 에 쓴 것이다. 이 시편의 경우 그가 묵상한 과거의 사건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바로의 폭정과 애굽인들의 탄압에서 구해내시기 위해 권능으로 역사하신 출애굽 사건이었다. 이 과거의 신적 승리에 초점을 맞춤으로 그는 새로운 시련 가운데서도 용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또 이렇게 하나님께 집중함으로 그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써 그의 고통과 혼란은 곧 승리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탄식

 

1/ 1-4절 첫 번째 탄원

 

[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4]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2/ 5-10절 두 번째 탄원

 

[5]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9]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10]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찬송

 

3/ 11-15절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묵상

 

[11]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12]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13]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14]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15]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셨나이다 (셀라)

 

 

4/ 16-20절 신현에 대한 묘사

 

[16]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7]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18] 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렛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추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20]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탄식과 찬양의 구분을 가로지르는 중앙집중적, 교차대구적 구조

A 8-9절 신조적 전통에 대한 의문 제기

B 10절 탄식의 끝: 하나님의 바른 행위는 바뀌었다.

C11-13절 찬송의 시작 : 하나님의 탁월성

B’ 14-15B에 대한 대답

A’ 16-20A에 대한 대답

 

크셀만은 말한다. “10절에서 탄식이 절정을 이루는 8-9절의 질문들이 16-19절의 바다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한 찬양적 표현에 의해서 응답된다.”

 

자기연민 때문에 심해진 고통을 은혜의 손아래 놓습니다.

병적인 자기 성찰적 올무에

영혼의 비를 뿌리는 구름과 번개치는 하늘, 날아가는 살을 봅니다(16-18)

하나님께서 곤경에 처한 백성들을 위해 움직이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근심하는 불안한 삶이 기도하는 가운데 깊이 생각하리이다.

하나님과 같이 큰 신이 누구오니이까?’하는 힘찬 외침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시인은 눈을 들어 지나간 옛 일을 본다. 본다 함은 추억 같은 회상이 아니다. ()한다. 들여다보고 되새기고 그 속에 깊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때의 은혜와 하느님 손길에 잡혀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그날의 은혜를 지금 여기에 끌어올리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셨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은혜는 과거형일 수 없다. 영원하신 분께 속한 것에 어찌 과거형이 있겠는가? 은혜는 늘 현재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 가운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하나가 된다. 시인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 지금 여기의 하느님을 다시 만나며 미래의 소망을 현재화한다.

아마도 우리는 이 시편을 이사야 40:31 기도과 같은 구절과 함께 읽어야 한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들은 새 힘을 얻을 것이며 독수리 날개짓 하듯이 올라갈 것이다.

그들은 뛸 것이나 피곤치 않을 것이며 그들이 걸을지라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RS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