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말씀 묵상

시편 76 편_ 거룩한 진노

주님의 약속 2020. 7. 1. 20:49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개역개정

소제목

[1]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알려지셨도다

[2]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3]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 하셨도다 (셀라)

[4] 주는 약탈한 산에서 영화로우시며 존귀하시도다

[5] 마음이 강한 자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장사들도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손을 만날 수 없도다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7]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셀라)

[10]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11]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12] 그가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그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1

A.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게하다(1-2)

그분의 전능하심을 알게하다(3)

2

B. 하나님의 진노가 영화로우시다

 

그 진노가 위엄 가운데 빛을 발하시다(4-6)

그 진노가 전능하심으로 소리를 발하시다(8-9)

3

C. 하나님의 진노가 자제되다

4

D. 하나님의 진노는 새롭게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

 

그 백성들은 합당한 반응을 보이라(11a)

그 원수들은 합당한 반응을 보이라(11b-12)

 

 

현대 사회에서 거룩한 분노는 금기시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금기를 폭넓게 수용해 왔으며, 그 문제를 절대 제기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_J. I. Packer

 

76편은 악한 침략군으로들로부터 하나님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강하게 방비해 주신데 대한 찬양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지키실 때 원수들에 대한 심판을 행하심으로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알리셨다고 선언한다.

많은 성경 주석가들은 역사적 배경이 주전 701년 산헤립의 앗수르 군대가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이신 주의 천사에 의해 멸망하고 185천명의 병사가 죽은 사건이라고 믿는다(왕하 18-19, 36-37). 아삽의 시편인 이 시편은 다윗 시대의 인물인 아삽의 후손이 썼거나 인도했을 것이다.

이 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에 따라, 전쟁을 좋아하여 용맹스럽고 전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잘 갖춘 원수들을 놀라우신 권능으로 막아주신 은혜와 진리를 찬송한 것이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군대와 싸워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시편입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유다는 독안에 든 쥐요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들어가 엎드려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구원의 하나님이 신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승리했을 때 그들은 이 승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가 존귀한 승리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귀한 승리란 어떤 승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인생들이 전장에서 겪는 대부분의 승리는 명예롭지 못한 이기심과 욕심이 섞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한 시점에서 히스기야가 경험한 승리는 순전히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한 것이어서 존귀한 승리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가 더욱 존귀했음은 그는 주께서 적들에게 그만 진노를 금하실 것을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 진정한 승자의 관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다만 인생이 주를 찬양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했습니다. 사람의 진노가 하나님의 찬양이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승자와 패자가 함께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다만 한 분 그분이 승리자가 되기를 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명예롭고 존귀한 승리입니까?

오늘 인생의 장은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피 내음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싸움은 불가피한 인류의 생존방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싸움이 피할 수 없는 인생이라면 누구나 승리자의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나 존귀한 승리를 꿈꾸는 우리 시대의 히스기야는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부당한 승리보다 차라리 깨끗한 패배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주께서는 존귀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그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현대 주석가들은 공통적으로 시편 76편을 네 단락으로 나눈다.

 

A.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다

 

1.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게하다(1-2)

원수들에 대한 무서운 심판의 결과로, 그 분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게 나타난다. 그 장막은 승리한 장군의 야전 막사로 성전을 묘사한다. 이 장엄한 구조물은 샬렘(예루살렘의 고대명칭)에 있다. 그의 영광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 처소는 시온(예루살렘의 또 다른 이름)에 있다.

 

2.그분의 전능하심을 알게하다(3)

하나님의 거룩한 성은 자신을 분명하게 계시하신 곳읻. 거기서 저가 성의 방어용 성벽을 향해 침입자들이 쏜 화살(불곷이 타오르는 미사일과 같은 무기)을 개치셨다. 적병들의 방패와 칼을 깨뜨리셨다. 그분은 예루살렘을 겨눈 모든 전쟁 무기를 쓸어 버리셨다.

 

 

B. 하나님의 진노가 영화로우시다

 

1.그 진노가 위엄 가운데 빛을 발하시다(4-6)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변명하기는커녕 주는 영화로우시도다라고 외친다. 하나님은 약탈한 산에서 존귀하신 분으로 나타난다. 문자적으로 이것은 먹이들의 산이며, 이스라엘의 압제자들은 그의 백성들을 공격하기 위해 침략한 위협적이고 높은 산들로 묘사한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고 삼으로 들짐승을 사냥하시듯 심판으로 그들을 먹어치우신다.

침략한 이방 장사들은 용감하고 마음이 강한 자들이지만, 죽은 시체들처럼 하나님께 탈취당한다. 그들은 영원한 죽음속에 마지막 잠을 잔다. 그들은 손을 놀리지 못하는 죽은 자들로 간주된다. 하나님의 꾸짖으심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다. 병거와 말조차 다 깊은 잠이 든다.

 

2. 그 진노가 전능하심으로 소리를 발하시다(8-9)

이 두려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시인은 하나님께 주는 경외할 자시니라고 말한다. 이 엄중한 경외심만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유일한 올바른 반응이다.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적에 서리이까? 아무도 없다.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에 죽음과 파멸이 임한다. 땅의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잠잠해 진다.

 

C. 하나님의 진노가 자제되다(10)

시인은 여전히 하나님을 부르며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것이요라고 외친다. 침략군들에게 거룩한 진노를 쏟아부으시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노를 보이신 데 대해 찬송을 하게 되낟. 침략자들이 신성모독을 하던 곳에서 이제 성도들의 찬송소리가 들린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금해진다.

 

D. 하나님의 진노는 새롭게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

1. 그 백성들은 합당한 반응을 보이라(11a)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그분의 진노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충성을 맹세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이 영적 헌신은 사방에 사는 모든 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에 대해 들은 이들에게 시인은 마땅히 경외할 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도록 하라고 말한다.

 

2. 그 원수들은 합당한 반응을 보이라(11b-12)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시는 하나님께 맹세와 예물이 드려져야 한다. 그분의 진노는 가장 강력한 인간들도 복종시키시며, 주님이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게 할 것이다.

 

성경주석자 매튜 헨리는 말한다.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백성들에게 아침마다 새롭듯이 악인들에 대한 그분의 진노도 아침마다 새롭다불신자들은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알고 회개하며 그분 앞에 나아와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경외심과 두려움 가운데 살아야 한다.

(12:5-11)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이 시편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실 여호와의 능력과 자발성을 강조한다. 2절과 3절은 일반적인 주제로서 자신의 처소를 이스라엘의 강한 사지-전사로 만들기 위해서 오신, 시온에 거하시는 자로 그분을 묘사한다참조. 48. 87, 132. 그러나 이 시편의 나머지는 그분을 시온에서 나오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이 시편은 자기 원수들과 혼돈의 세력들에 대한 여호와의 강력한 신현적 승리를 축하한다. 강한 사자는 그의 처소가 시온산에 있지만, 그의 꾸짖음과 심판은 인류의 격노를 잠잠케 하기 위해서 발현된다. 시편 끝부분에서, 세상은 그의 사자 같은 능력하에 있다참조. 1:2. 그분은 인류의 파괴적인 능력을 대항하기 위해서 자신의 해방의 능력을 사용하셨다.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시 7610

Human wrath serves only to praise you,

when you bind the last bit of your wrath around you.

하나님의 경제학에는 손해란 없습니다. 심지어 전쟁의 혼돈과 황폐함도 하나님의 영광에 일조합니다.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10),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보다 인간의 분노가 헛되이 돌아간 예는 없는 것 같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으이“(5:20) 말입니다.

"주가 지신 십자가를 나는 자랑하노라 성경 중의 모든 말씀 거기 중심 되었네존 바우링'주가 지신 십자가를찬송가 148. 아멘.

 

히브리 시편들이 많은 경우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한다면, 오경웅은 자주 그 흐름을 이어 하나님의 승리가 이 땅에 낳은 평화와 그 평화를 누리는 이들의 기쁨을 묘사한다. 이 시편에서도 11, 12절의 히브리시인의 어감과 오경웅의 어감이 차이가 있다.

히브리 시에서는 주님의 백성이든 대적하던 제후들이든 그들 모두에게 주님은 두려우신 분이다. 그래서 서원을 갚아야 하고 왕들도 떨어야 한다. 그러나 오경웅은 그 하나님이 베푸신 결과로 백성은 마음에서 솟구치는 감사를 드리고 제후들은 자기를 절제하고 이겨서 이 세상이 인()으로 돌아가도록 힘써야 한다고 권면한다.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되 그 분이 행하신 역사(役事)를 온전히 누리게 될 때 두려운 하나님의 바탕에 자비와 은총이 넉넉히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하신 바가 사랑이었음을 사람들은 얼마나 뒤늦게 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