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 편
이 시편은 무죄한 사람이 적들의 거짓 고소에 직면해서 보호를 구하는 기도이다. 시편기자는 언약에 따르는 의무의 불이행을 비롯한 행위를 했다는 부동한 고소를 당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결백을 입증하고 거짓고소와 그 결과들이 고소자들의 머리로 되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본 시편의 제목은 그것이 다윗의 생애에 있었던 어떤 특별한 사건, 즉 ‘구시’라는 이름의 베냐민 사람에 의해 거짓 고소된 사건과 관련 있음을 말한다. 이 사건이 성경 다른 곳에서는 명백하게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의 생전과 생후에 베냐민 사람들로부터 반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기록에 의해 잘 입증되어진다(삼상 24~26절 삼하 16:5 및 20:1). 만약 본 시의 제목이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고 구시의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면 대상 29:29에서 열거된 현존하지는 않는 역사적 자료 속에 이 사건에 관한 기사가 들어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자신의 처지를 설명함(1~10)
본 시는 각각 “여호와여 내 하나님이여”라는 말로 시작되는 두 개의 진술로 시작된다. 첫 번째 진술은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이다(1~2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시편기자의 간구하는 구원은 실제로 그가 무죄해야만 찾아올 것이다.
첫 번째 진술은 기도인데, ‘추적자들’로부터의 구출을 요청한다. 적들은 칼이 아니라 말이라는 보다 강력한 무기로 그를 잡으려고 한다. 사자의 직유는 극적이다. 아무런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사나온 사자의 날카로운 이빨에 의해 갈기갈기 찟기는 무력한 사람과 같다. 그는 도와달라고 외치나 구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가 지금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1절)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 내가 ‘주께 피하였기’(1절) 때문이다.
두 번째 진술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엄숙히 맹세하는 것이다. 그는 ‘만약’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이를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고대에서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나 집단들은, 고대 힛타이트 계약으로부터 발췌한 다음의 인용문이 예증해 주듯 친구와 적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대는 나의 친구와는 친구가 되어야 하고, 나의 적과는 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시편 기자가 화친한 자의 적을 살려주었다면 그는 실제적으로 배신행위를 한 것이다.
중재와 재판을 구하는 기도는 4개의 명령문으로 시작된다. ‘일어나사’,‘막으시며’,‘깨소서’,‘명하셨나이다.’ 이 표현은 더할나위 없이 급박한 어조로 하나님에게 역사해 주실 것을 애원하고 있다.
중재와 심판을 구하는 기도는 시편기자의 화신에 대한 진술로 끝을 맺는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10절)
‘방패’는 군사적 이미지다. 적들은 자기에게 그들의 말이라는 화살과 창을 던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재판관이실 뿐 아니라 법정에 선 피고의 변호자시다. 시편기자가 처음에 간구한 구원을 기대할 수 있던 것은 오직 ‘마음이 정직했기’(10절)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악인들의 운명(11~17)
본시의 끝부분은 특별한 기도로부터 일반적인 찬양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전환은 10절의 표현처럼, 시인이 도달한 깊은 확신에 의해 촉발되어진 것이다.
악인들은 거짓고소로 시인을 곤경을 몰아넣었다. 의로운 하나님의 존재가 이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악인들의 운명이 악인들과 의로운 하나님과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진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11~13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다. 회개치 아니하는 죄인은 분노로써 심판하실 것이다. 심판을 위해 칼을 갈고 활을 이미 가셨다. 화전, 불화살들을 쏘기에 알맞게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공격태세를 갖추시나 악하고 회개치 아니하는 죄인이 최종 도발을 감행할 때까지 행동에 돌입하지는 않으신다.
이제 시인은 두 번째 묘사, ‘악인들에 대한 묘사’로 넘어간다. 악인의 죄의 기원이 잉태와 임신의 은유로 묘사된다. 여자가 곧 분만할 아이를 위해 수고하는 것과 같이 회개치 아나하는 죄인도 역시 그의 불법을 위해 수고한다. 악이라는 씨가 그의 마음에 뿌려졌다. 수고 후에 그것은 ‘거짓’으로 거짓고소로 나타날 것이다.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판 구덩이 속에 자신이 빠진다. 악은 부메랑과 같아서 타인을 해치려고 꾸민 악행이 자시에게로 되돌아오게 한다.
시인은 자기가 처한 곤경으로 시야가 가리워진 상태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거짓고소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기도할 때는 적들이 그를 해치려고 꾸민 흉악한 음모 때문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제는 찬양의 이젠 찬양의 어조로 기도를 끝낸다. 평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17절)
나오며
시편기자는 거짓고소로 생긴 걱정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실제적이고 정당한 걱정이다. 그가 기도를 시작할 때 그는 눈에 띄게 균형을 잃고 있다. 거짓 고소자들이 승리를 한 것처럼 보이다. 이제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것은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기도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평정을 되찾았다. 죄인들이 판 함정의 가장자리에서 그들과 어울리기 보다,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결백한 상태로 섰다.
악에게 아첨하고 불의한 자들과 한 통속이 되는 것보다 결백을 그대로 간직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는 편이 더 낫다.
벧전 2장 19~23절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소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나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시편 7 편
Wed 19th Dec 18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김광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