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강해_막 13장 그 날과 그 때_김광영목사

주님의 약속 2020. 2. 3. 15:16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NIV>

[32] "No one knows about that day or hour,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only the Father. [33] Be on guard! Be alert! You do not know when that time will come. [34] It's like a man going away: He leaves his house and puts his servants in charge, each with his assigned task, and tells the one at the door to keep watch. [35] "Therefore keep watch because you do not know when the owner of the house will come back--whether in the evening, or at midnight, or when the rooster crows, or at dawn. [36] If he comes suddenly, do not let him find you sleeping. [37] What I say to you, I say to everyone: 'Watch!'"

 










 

   본 단락의 첫 시작은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어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주제의 전환을 지시해 준다. 첫째, ‘그러나~에 대해서는(페리 데)’ 이 주제의 전환을 지시해 준다. 신약성경에서 이 어구는 자주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갈 때 사용된다.

둘째, ‘그 날과 그 때라는 표현은 13장 논의에서 처음으로 도입되는데, 이는 그 지칭대상이 새로운 것임을 시사해 준다. 앞 단락들에서 그 날들에 대한 징조도 주어졌고(14), 그 기한도 명시 되었는 데 반해(30), 본 단락에서 그 날이나 그 때는 아무런 징조도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그 기한도 한정되어 있지 않고, 철저한 무지가 선언되고 있다.

 

 

   알려져 있는 날에서 알려지지 않은 날로의 전환이다. 이렇게 볼 때, 4절의 질문에서 시작하여 31절까지 진행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논의는 31절에서 마무리되었고, 이제 32절에서는 새로운 주제, 그 날 그 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성전파괴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하신 후95-21), 그들의 내면에서 제기되고 있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답변을 간략하게나마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신 것 가다. 이 두 사건의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하시지만, 정작 부연 내용엣는 둘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하신다. 곧 성전 파괴는 이 세대안에 일어나 것인 데 반해, 재림은 그 날과 시각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전파괴와 관련해서는 분명한 징조가 주어질 것인데 반해, 재림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징조도 주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제자들은 언제나 개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종말의 그날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고 심지어 아들조차 모른다.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그 날(테스 헤메라스 에케이네스)’은 공관복음서에 딱 한번 사용된 구약의 관용어구로, 종말이 돌연히 올 것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천사드를 대동하고 인자가 오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천사들이 종말이 언제 올지를 모른다면, 그의 제자들이나 자칭 선지자들이 모를 것이 당연하다. 때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깨어서 대비할 필요가 잇다 마가복음 기자는 종말 기대를 굳건히 붙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종말이 언제 올 것인지를 계산하지 말라고 날카롭게 경고한다.

 

33-37절에서는 제자들과 교회 공동체에게 깨어있으라는 촉구가 일어난다.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문지기의 비유가 말해주듯이 재림의 시간을 모르므로 깨어 있는 것이 필요하다. 깨어 있음은 경건한 자의 모습이다. “경건한 사람의 생활은 졸거나 꿈꾸거나 도취하지 않고 마음이 언제나 깨어있고 각성된 긴장 속에 있어야 한다.” 슈바이처는 말한다. “인간이 올 주님에 대해 항상 가져야 하는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에 대하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 비유에서 집주인은 예수님을, 종들과 문지기는 제자들을 지칭한다. 특히, 35절의 깨어있으라(그레고레이테)’라는 2인칭 명령은 비유 내의 문지기와 제자들을 일치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집 주인이 돌아오는 시점이 밤 시간으로 규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대 사회에서 여행은 대개 낮에 하는 것이 통례였는데, 이처럼 집 주인이 밤에 올 것으로 묘사하신 것은 당신의 재림이 가장 예측하지 않은 시점에 있게 될 것임을 부각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비유에 이어 이 교훈이 제자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연관된 것임을 밝히신다.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깨어있음의 마지막 명령은 제자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명령이다

 

   예수님이 집주인이 돌아오는 날까지 종들에게 문지기에게 그의 권한을 위임한 것을 말하다가, 돌연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신 후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그들이 알지 못함이라고” 3인칭으로 말해야 할 것을 집주인이 얹 올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2인칭으로 말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비유의 취지를 놓치지 않도록 새삼 강조해 두시는 것이다.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너희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저물 때 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인지, 새벽에인지알지 못한다. 4시점은 로마의 관습에서 밤의 네 경점과 일치한다. 잠자고 있는 것이 들키면 주인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들통 나고, 직무유기고 불충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하라”(14:34,38)는 권면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세 번이나 잠에 빠진다. 제자들은 깨어서 주의하고 있는 대신 졸았다. 그들은 갑작스런 위험 앞에서 그들의 주인의 버리고 만다.

   교회 공동체는 주님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종말에 비추어 산다는 것은 그날을 열광적으로 동경하거나 그 기간을 계산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시대사를 주목하고 주가 위임한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의식한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