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마가복음강해 막13장 14-23절 큰 환난

주님의 약속 2020. 1. 16. 19:30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가장 큰 환난

13:14-23

    

 

14-20절에서는 성전 파괴의 임박성을 알려 줄 유대땅에 임하게 될 위기 상황이 기술되고, 21-23절에서는 그 위기상황에서 더욱 기세를 떨치게 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가 기술된다.

예수님의 적극적인 답변은 그러나 너희가보게되면(호탄 데 이데테)로 시작된다. 이는 이후 답변이 제자들이 기대하는 성전 파괴사건의 징조임을 시사한다. 그 징조는 멸망의 가증케 하는 것이서지 못할 곳에 서는 것이다.

 

(다니엘 9:29)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이 징조를 보게되면 유대에 있는 자들을 곧바로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산으로도망해야 한다.

 

유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은 유다지방이 산악지대이므로 동어반복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견고한 도성으로 도피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고 산들은 전형적인 도피처라고 본다면 난점은 제거된다.

역사적멸망케 하는 가증한 것서지 못할 곳에 서는사건과 관련된 것이 무엇일가? 2가지가 주목할 만하다.

첫째, 70년 티투스(Titus)가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장군들과 함께 성전의 성소에 들어가 성소를 더럽히고(요세푸스), 후에 로마 군인들이 군기를 들고 성전 뜰에 들어가 동편 문 맞은 편에 세우고 그 앞에 제사를 드린 사건이다. 하지만 인상적 사건이긴 해도 징조로서 기능은 적절치 않다. 예루살렘이 점령당한 상태에서 그곳에서 도망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이미 전쟁이 지나간 상황에 도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둘째, 67,68년 겨울 기스칼라의 요한 지도하의 열심당원들이 성전을 자신들의 본부로 삼고, 판니를 놀림감 대제사장으로 세워 조롱조로 제사 의식을 행하고, 성전 경내에서 난폭한 행동과 싸움을 벌인 사건이다. 이 사건이 베스파시아누스가 68년 초 유대지역 전면전을 펼치기에 바로 앞서 일어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대지역 그리스도인들이 피난을 위한 징조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갖는다.

도망하는 주체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유대에 있는그리스도인들이다.

(21: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구약에서 은 종종 멸망 상황에서 피난의 장소로 언급된다. 그들이 직면하게 될 위기상황은 너무도 급박한 것이어서 아무런 지체도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다양한 상황을 예로 들며 그 급박성을 부각시키신다(15-16). 도한 임신한 상태, 젖을 먹이는 상태, 겨울 등은 피난을 불편하게 하고 더디게 할 것이기에, 그 위기가 그러한 때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할 것을 촉구하신다(1-18).

무엇을 가져오려고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말고 즉시 옥외 계단을 통해 도피해야 한다. 무엇을 가져온다 해도 아무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겉옷을 길 가에 벗어 놓았다고 해서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겉옷 때문에 되돌아가서는 안된다. 이 전승은 론의 아내를 염두에 두지 않지만 눅 1731-32의 넓은 문맥에서는 롯의 아내가 생각되고 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임신했거나 아기에게 젓먹이는 여인들이 언제나 모든 재난을 당한다. 요세푸스는 히르카누스치하 팔레스틴이 당한 파르터인(고대이란의 유목민)의 침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여인들이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면서 조국과 포로가 된 가족들을 떠나 정처 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의 곤경에 대한 경험이 마지막 때의끔찍한 일들에 적용된다.

그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환난 가운데서도 선택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는 놀랍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날들’, 곧 환난의 시간을 단축하기까지 하시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예루살렘이 포위된 기간은 5개월은 남짓되는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다. 이는 성전을 파괴하는 전쟁 자체과 그 기간마저도 실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보여준다. 본 절에서 언급된 구원13절의 경우와 달리 육체적 생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원의 대상이 모든 육체(사크르스)’로 표현된 것은 이러한 추론을 지지해 준다. 하나님은 환난이 기간에 복음증거를 위해 목숨을 내놓기까지 인내하는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영적으로 구원하시지만, 이 환난의 기간에 모든 백성이 육체적으로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육체적 생명을 보존하셔서 환난 이후 복음 증거 사역을 예비하도록 하신다.

 

어려움을 말씀하신다. 한편, 마태가 본 단락의 내용을 제자 파송 강화에서 소개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아마도 마태는 성전파괴상황(13/24)과 제자파송강화(10)사이의 시간적 내지는 상황적 연관성을 전제한 것 같다. 이 기간 동안 제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그로 인하여 적대자들로부터 미움과 고난을 받게된다. 이 고난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그 상황을 빨리 멋어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마지막 가장 큰 곤경에 처해서 두가지가 필요하다. 즉 하나님 세상의 창조자였듯이 역사의 지배자이기도 하다는 것, 그가 자신의 공동체를 잊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악마적인 미혹에 대해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된 이후에 끝이 올 것이다. 특별히 고난을 언급한 구절(9,11)사이에 이 복음 전파의 필연성을 언급한 것은 마지막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의 사명이 바로 고난을 무릅쓴 복음증거임을 보여준다. 내 주변에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자들은 없는가? 이적과 기사로 미혹하는 지도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말씀을 외면한 이 시대의 기복주의와 은사주의에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