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강해_시편 60 편_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_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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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시 60:11-12)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2]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5]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11]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수산에둣’은 ‘증거자의 백합’또는 ‘아름다움의 백합’이란 말이다. 당시에 누구나 잘 알고 있었던 어떤 노래의 첫마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장으로 수산에둣에 맞춘 노래이다.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메소보다미아의 수리아인-칼빈 사역)과 아람소바(소바의 수리아인-칼빈 사역)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염곡에서 쳐서 일만 이천인을 죽인 때에”이다.
이 수리아 나하라임은 헬라어로 ‘메소보다미아’를 가리킨다. 헬라어로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의 중간’즉, 티그리스와 유브라데 두 강의 중간을 가리킨다. 유브라데 강에 있고 다우시은 소바의 왕, 르훕이 자기 나라의 경계를 회복하려고 이 강으로 갔을 때 다윗이 그를 쳤다.
(삼하 8: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이렇게 다윗은 수리아에 연하여 있는 지역의 사람들과 전쟁을 했다. 그리고 암몬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지역의 군대들을 쳐부수었다. 성경역사에서는 2만 2천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이 되어져 있다.
(대상 18:12-14) 『[12]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인지라 [13]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4]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이 시의 제목에는 단지 일만 이천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쓰여있다. 이 불일치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 군대를 격파했다고 역대기가 쓰고 있는 인물은 아비새인데, 이 시에는 요압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의 군대가 둥 형제들에게 나뉘어 맡겨졌음을 숙고하지 ㅇ낳으면 안 된다. 아비새는 계급과 권한이 낮았고, 그들 두 사람이 그 승리를 얻는 데 함께 참여했지만 그것에 대한 칭찬이 최고 사령관에게 돌아간다고 이상히 여길 것이 없다.
사람의 힘을 빌리고 모아 계획을 이루려 도모하는 것과 삶과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의 손길을 붙잡는 것의 대조이다. 우리말 성서는 ‘사람의 구원은 헛되고’고 단언하며 오경웅은 ‘사람의 손길이라야 이룰 수 잇는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어디서 청할까? 그분이 이미 주신 말씀을 붙잡는 길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민족을 분할하고 물리치고 점령할 것이라고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시고 다스릴 길을 말씀하셨다. 당신이 하신 말씀이니 당신이 이루시라고 청하는 것이 길이다. 두리번 거리며 사람의 손을 찾지 말 일이다. 그분 손길에 잡힐 수 있길 빌어야 한다.
1문단(1-5절) : 패전에 대한 탄식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2]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5]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홍수처럼 그 전선이 허물어져 뒤로 물러가고 땅이 진동하여 지진의 때와 같이 갈라지는 그런 패전을 당한 나라의 패주하는 모습을 소상히 묘사한다. 이 백성은 독주에 취한 듯 취하여 있고 그 혼란의 광란 속에서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 직접적인 사건들 저 너머를 볼 수 있고 또 그 사건들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감지하고 놀라기까지 한다.
진실로 이러한 탄원시는 그 백성이 불행을 겪을 때의 그 좌절을 결코 감추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거절하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믿고(4절: 주를 경외하는 자들; 5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 또 그들의 고통을 그들에게 분노를 터뜨리신 그 하나님에게조차 다 털어놓는다. 결국 하나님 자신이 그원수로부터 오는 위협 때문에 흩어졌던 그 군대의 전열을 다시 규합하여 가다듬으려고 친히 깃발을 세우셨다.
2문단(6-7절) : 하나님의 선포와 응답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여기에 ‘세겜’과 ‘숙곳’이 언급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정착했었던 요단강 동편영역으로, 그 요르단 동편의 길르앗 영토를 언급하고, 초기에 요르단 서편 땅 중앙부분에 발판을 구축했던 므낫세 지파를 언급하고 있다.
계약 백성중 가장 눈에 띄는 두 지파, 즉 북쪽의 ‘에브라임’과 남바으이 ‘유다’가 고풍적 언어로 대담한 시적 묘사에 의해서 여호와의 투구와 규(홀)로 묘사된다. 이 여호와는 전쟁의 용사이신 계약의 신으로서, 남동쪽 ‘모압’과 남쪽의 ‘에돔’이라는 두 나라의 인근 나라들에ㅣ게까지 그의 주권자적 권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목욕통’과 ‘신발을 던지는 것’에 고나한 묘사는 이 진리를 전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위험과 권세를 강조한다.
3문단(9-12절) : 왕의 간구와 의탁
[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11]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전쟁의 결과에 책임이 있는 그 사령관은 그의 완전한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정치적 위기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려는 상태와 투쟁을 일으키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의심들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그 나라를 돕기를 거절하는 그 분노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면전에서도 계속 승리를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의 의 도우심을 비는 기원과 그러한 기원을 드릴 이유에서 볼 때 인간의 모든 모두 헛되다는 사실, 즉 이 신앙은 인간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노력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인간의 노력은 어떤 것도 달성해 낼 수 없는 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모든 의심을 몰아내고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정서적으로 반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시기하기도 하시고 질투하기도 하시며 대론 우리에게 화를 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분노 그 자체를 정죄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분노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격적인 존재라 할 수 없다. 성경은 우리가 분노를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와 잘못된 동기의 분노를 정죄하고 있다. 우리가 분노할 경우 해질 때까지 분노를 품지 말라고 경고하며 또한 사랑의 성냄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생산성이 없는 분노를 경고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노는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이지만 성도들에게는 징계의 의도로 표현되고 있다.
때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실패를 허용하신다. 하나님의 분노일 수도 있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는 시험일 수도 있다. 비록 실패했을 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가 도움을 구하자. 실패는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다윗은 위기에서 사람의 도움이 헛되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