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강해 시편 56 편_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_ 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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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56:8)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사울왕의 위협으로 인해 블레셋 땅 가드로 피신하였다가 그곳 사람들의 미움을 사 도리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잡히게 된 상황에 다윗이 쓴 비탄시이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마다 더욱 더 담대히 하나님을 의지한다. 표제의 ‘믹담’이란 황금시 혹은 금언시(루터의 견해에 의하면 ‘황금보석’)를 말한다. ‘요낫 엘렘 르호김’은 멀리서 침묵하고 있는 비둘기란 뜻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엘렘의 비둘기에 맞추어’라는 표제는 아마 어떤 곡조에 붙여 노래 불려졌던 어떤 노래라는 것을 가리킨다.
(삼상 21:12-14)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 1-2절
도움을 비는 짧은 부르짖음으로 시작하고 탄식과 그 탄식의 이유가 나온다. 시편 35편에서처럼 예배자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원수들은 전쟁용사처럼 시인을 치며 삼키려한다.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2/ 3-4절
원수의 많은 숫자, 그들의 탐욕 자만심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단호히 내어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전력을 귀울인다. 시인은 다른 모든 것은 비틀거리는 위험에 있다해도 한 확고한 발판을 갖게 된다.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적은 모든 것은 단지 육체일 뿐이다. 그의 창조자의 손 안에 있는 스스로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자이다. 그가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을 아는 자에게는 어떠한 위협도 있을 수 없다.
(사 31: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3/ 5-7절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다시 탄식으로 빠져드는 것은 그러한 신앙적 인식은 자신과의 열렬한 투쟁을 통하여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투쟁은 경건한 성도라고 결코 예외가 아니다. 단지 아주 짧은 순간 동안 그가 문제제기를 하였던(7절)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이 예배자의 믿음은 마침내 하나님의 ‘분노’가 그 기만적인 대적자들을 내어 던지시기를 비는 그 기도를 통해 승리를 얻는다.
[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4/ 8-9절
그러나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고난을 무시하시지는 않는다. 고통과 애곡 속에서 보낸 그 많은 시간과 잠 못이루는 밤은 하나님께서 관여되어 있는 한 헛되이 지나가지는 않는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고난은 주께서 주신 자본이다. 그가 예약해 두신 것이고, 그가 모아두신 것이다.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게하르트 찬송가 “내가 가슴과 입으로 주께 노래하나이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기독교인이 얼마나 자주 눈물을 흘리며
그리고 그의 번뇌는 어디에 잇는지를 주님은 계산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조용한 눈물이라도 단지 그렇게만 적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취하여 저축해 두십니다.
5/ 9-11절
시인은 그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말하고 있다. 분명한 언급을 아니지만 암시를 하고 있다. 아마 그전에 잠시동안 공중예배에서 선포된 신의 은총의 약속, 즉 그에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확신시켜 주었던 그 신의 은총의 약속일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의 신뢰를 공언할 때 사용했던 그 말씀 4절로 돌아간다. 이 말씀을 통하여 그의 자신의 삶 속에서 진리가 다시 증명되었던 그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확인한다.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6/ 12-13절
시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감사를 드린다. 그는 맹세를 통하여 약속한 그 감사예물, 즉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그리고 그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드릴 것이다. 그는 흔들리는 일 없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뢰의 확고한 기초 위헤 자기의 입지를 세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앞에서 고난의어둠을 박차고 나와 생명의 빛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다윗은 이런 고통과 두려움의 날에 주를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약속의 말씀을 찬송하는 것을 배웠다.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주님이 자신의 방패요 피난처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이렇게 고백한다.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오리까?”
우리는 울고 싶을 때 눈물을 땅에 쏟을 필요가 없다. 주께서 우리가 흘릴 눈물을 위해 은총의 병을 준비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게 된다. 그러면 어느 날 그 눈물을 이웃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명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눈물을 주의 병에 담을 줄 아는 사람들은 동시에 감사의 제사를 드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