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말씀 묵상

시편 44 편 주여 깨소서 _ 진주 주약교회

주님의 약속 2019. 8. 30. 09:32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욥기에서 제기된 문제에 간단한 설명이 불가능함과 마찬가지로 시 44편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욥기가 검토와 성찰을 위해서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면,  44편은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열렬한 호소가운데서 그것들을 제기한다.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2]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3]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4]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5]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6]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8]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전쟁의 패배 후 국가적 애가

 

1/ 현재의 확신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과거의 행적들(1-8)

a. 백성 : 과거의 하나님의 행적(1-3)

b. : 과거를 현재에 적용함(4)

c. 백성 : 확신의 근거들(5)

d. : 신뢰의 선포(6)

e. 백성 : 확신의 선포(7-8)

 

2/ 애가(9-22)

a. 백성 : 현재의 위기에 대한 애가(9-14)

b. : 수치의 선언(15-16)

c. 백성 : 결백의 선언(17-22)

 

3/ 마지막 기도(23-26)

왕과 백성이 구원의 도움을 위해 기도한다

 

   본 시편의 애가는, 이미 전투에 패배하고(9-10) 포로들이 끌려가서 노예가 되었고(12), 군대는 살육의 긴 날에 많은 죽임을 당했다(22)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애가는 재난의 위협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패배한 이후에도 사용되었다. 44 편은 삿 5장처럼 승리의 찬송과 반대가 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패배에 대한 애도의 찬양이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욥기에서 제기된 문제에 간단한 설명이 불가능함과 마찬가지로 시 44편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욥기가 검토와 성찰을 위해서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면, 44편은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열렬한 호소가운데서 그것들을 제기한다. 욥은 그의 위기 이전에는 그의 귀로 듣기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 후에 그는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하였다(42:5), 그러나 시 44편의 기자는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1)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비전이 없었으며 다만 도움을 위한 절망적인 기도만이 있었다.

 

 

1/ 현재의 확신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과거의 행적들(1-8)

 

   서두의 이 시는 역설적인 면이 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위대한 행적들을 알고 있다. 그 조상들에게서 그러한 사실들을 배웠다. 그들의 국가의 존재는 이방의 원수들을 정고하고, 그들의 조상들을 그 땅에 정착시킨 하나님의 과거 행적들의 결과였다. 그 업적은 하나님께서 그 선택된 백성의 역사에 직접 참여하신 결과였다.   그리고 과거는 항상 현재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 믿음의 사람들은 현재 가운데서 미래의 의미를 잉태하는 과거의 하나님의 위대한 행적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히브리신앙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또다시 하나님만이 승리를 베풀어 주실 수 있으며, 하나님만이 승리에 대한 찬양과 영예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는 것을 인정하는 일에 가담한다(7-8).

 

[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8]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만일 시 44편이 9절로 끝난다면, 그것은 놀라운 승리의 찬양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애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처음의 당혹스러운 어조가 분명하게 된다. 서두는 뒤따라오는 뚜렷한 대조를 위한 무대를 제공해 준다.

 

2/ 애가(9-22)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백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현실은 예상과 빗나가고 있다. 하나님은 전투의 날에 그 군대와 함께하지 않으셨으며, 무서운 패배가 있었다. 어떤 이는 도망가고 어떤이는 죽고, 어떤 이는 포로가 되어 잡힌다. 패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다른민족들이 보기에 동정과 비웃음이 대상이 되었다.

 

[13]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현실적인 당혹감은 17-22절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왕과 민족이 불행하게도 하나님에 대한 계약의 의무들을 이행하지 못했다면 전투에서의 그들의 패배는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온전함을 유지하고, 하나님께서 설정하는 것을 정직히 행하고, 첫 번째 계명을 깨드리지 않고,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비밀을 갖지 않았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패배를 경험한 전장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재칼들과 하이에나들만이 거하는 바벨론의 삭막한 장소들이 되었다.

 

(13:21-22) [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22]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3/ 마지막 기도(23-26)

 

   시 44 편의 문제는 계약신학의 문제인 것 같았다. 만일 왕과 백성들이 계약에 충실했다면(17-21), 하나님은 어찌하여 보호와 구원을 베푸시겠다는 그의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시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이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그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어떤 신학적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실존적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그 해답은 본 시편을 마무리 짓는 기도 안에서 발견되어진다. 어찌하여로 시작되는 두 개의 질문은 그 기도를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준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인자하심이라는 본 시편의 마지막 단어는 다시 탄원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비록 백성들이 충실하게 지켰던 그 계약은 불가사의한 일이 되었지만, 구원의 희망은 여전히 하나님의 계약의 인자하심 가운데 남아있다.

 

   합리적 차원에서는 직접적인 경험이 하나님은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하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이성보다 깊은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앙은 이성과 신학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방식으로 신비를 인식하였다. 신앙은 군사적인 위기나 신학적인 위기의 때에도 기도를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궁극적으로 시 44 편의 마지막 기도 가운데서 욥기와 동일한 방향, 즉 하나님과 그의 길에는 엄청난 신비가 있으나, 우리는 계속 의지하고 기도해야만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그의 기도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22)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솔직한 무례함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무례함은 기도에 의해서 무마된다. 매일 하나님이 일어나셨다라면 신앙은 오히려 연약해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다시한번 갈구하며, ‘영원히그들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을 믿고, ‘일어나소서’, ‘깨소서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주약교회 수요예배 시편설교

김광영 목사

 

* 엠마누엘 레비나스 : 아우슈비츠 이후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유대인 동족들의 탄원에 제기한 물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아이로 두기로 원하셨다면, 즉시 구원하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성인으로 자라가길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