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6 편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들 한 팀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길거리에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납치한다. 아이히만은 수백만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들로 추방했다. 이제 그는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 앞에서 법정에 서게 되었다.
전 과정이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역사적 첫 재판이었다. 세계의 눈이 예루살렘 법정에 고정되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강제 수용소 감독인 여히엘 디누르가 증인석에 섰을 때였다.
영상 자료는 법정에 들어가다 아이히만을 보고 멈춘 디누를 보여준다. 이 순간은 십팔년 전 아이히만이 디누르를 아우슈비츠로 보낸 이후 디누르가 아이히만을 처음 본 때였다. 디누르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사람들로 가득 찬 법정의 질서를 위해 판사가 판사 봉을 두드렸을 때 디누르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마이크 윌리는 나중에 디누르를 인터뷰했고 그 순간에 대해 물었다.
디누르는 증오에 압되었을까? 두려움에 압도되었을까? 끔직한 기억들에? 아니다. 모두 아니었다... 별안간 그는 아이히만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위엄있는 군 장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디누르는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두려웠습니다”, “...나는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았습니다. 나는 .... 그와 똑같습니다”
윌리스는 디누르의 끔찍한 발견을 무서운 문구로 요약했다. “아이히만은 우리 모두 안에 있다.” 이 끔찍한 발언은 인간의 속성에 대한 핵심적인 진리다.
우리가 실제로 훔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도둑들이기 때문에 도둑질의 유혹을 받는다. 우리가 우리 형제를 문자적으로 죽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인자들이기 때문에 살인의 유혹의 받는다. 불륜을 저지르지 않아도, 우리는 간통자들이기 때문에 불륜의 유혹을 받는다. 야고보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3,14)라고 말한다.
■ 우리의 죄를 드러남
시 36 편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끔찍한 진술로 시작한다.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시 36:1)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막 10:28)
죄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일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가 이 심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롬 3장에서 바울은 16개의 구약본문에서 14문구를 인용함으로써 인류의 죄악 가득함을 묘사한다. 죄의 치명적인 힘을 묘사하는 마지막 말로서 바울은 시편 36편 1절 ,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를 인용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끔찍한 지점까지 우리는 어떻게 도달하게 되는가?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 무엇을 행하는가? 2-4절은 어둠으로 향하는 인류의 하강을 표현한다.
1/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한다.
이것이 자기기만, 즉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과 함께 내면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행하는 것에 대해 결코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랑한다.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시 36:2)
어떻게 우리는 우리가 벌을 피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 자랑하는가? 많은 사람이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즉 일단 당신이 죽으면 그것이 끝이라고 믿기를 선택하는가?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게 창조자와 심판자는 없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나중에 회개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함으로 스스로를 속이다.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이 내일 혹은 심지어 오늘 밤 살아 있을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그들이 도덕적인 삶을 살기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행한 선한 것들이 그들이 저지른 어떤 작은 죄들보다 훨씬 ㅁ낳다고 생각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자랑한다.
또 다른 사람은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행한 어떤 큰 일을 기억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자랑한다. 예배하고, 선교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왔기에 천국 갈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이는 그들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모태신앙이라서 구원받았다고 믿는다.
2/ 우리는 다른 이들에 대해 죄를 짓는다.
어둠 속으로 향하는 우리의 내려감은 자기기만으로 시작하지만, 우리 말과 행동에서 겉으로 드러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시 36:3, 4)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책임이 없다면, 우리의 죄가 가득한 마음이 우리를 이끄는 곳으로 가는 것에서 우리를 멈추게 할 것은 없다. 3절은 특히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다윗은 한 때‘지혜와 선행’을 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쳤다.’ 죄는 그의 마음에 속삭였고, 그는 죄가 하나님께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랑했으며, 이제 그는 그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타락했다.
■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드러냄
우리의 죄에 대한 끔찍한 실재에 대한 진지한 관찰 후,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선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 또 다른 길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달려가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따.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을 거라고 하며, 점점 더 깊은 어둠속으로 내려갈 수 있다.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빛 가운데 나올 수 있다. 다음은 다음 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하나님을 보고 그 가운데 나아간다.
1/ 이분이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시 36:5, 6)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다고 말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Guess How Much I Love You)
작은 밤색 산토끼는 자기가 닿을 수 있는 최고로 높이 그리고 자기가 뛸 수 잇는 최고로 멀리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작은 밤색 산토끼가 외쳤다.
“나는 강이 멀리 가는 만큼 아빠를 사랑해요.”
큰 밤색 산토끼가 말했다.
“나는 그 강을 넘고 산을 넘도록 널 사랑한다.”
“나는 달에 닿을 정도로 아빠를 사랑해요.”
“나는 달에 갔다가 돌아올 만큼 널 사랑한다.”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우주의 광대함보다 크시다.
또, 하나님의 특성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이다. 하나님은 ‘너희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 1:18),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다윗은 하나님의 ‘의’가 가장 높은 산들과 같다고 노래한다. 모든 상황에 옳은 일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공평하시고 항상 정의로우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심판주’이시다. 그 심판은 바다만큼 깊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의 밑바닥까지 보신다. 하나님은 인간 마음의 밑바닥까지 보신다.
하나님은 ‘구원자’시다. 죄는 우리를 파괴하고 인류와 자연을 모두 파괴했다. 하나님은 깨어진 삶을 새롭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깨어진 가정들을 새롭게 하신다. 죄로 파괴된 이 온 창조 세계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신다.
2/ 이것들은 하나님의 복들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시 36:7)
이 그림은 위험에서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깃털 아래 숨기고 있는 암탉의 그림이다. 암탉은 심지어 그렇게 하다가 죽을지라도 병아리를 보호할 것이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후 노부오 하야시는 집에 돌아와 불에 탄 암탉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 날개 아래 병아리들이 여전히 안전히 싸여있었다.
우리를 구하고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의 그늘을 만들어 주셨다. 그분이 우리를 감싸고 보호하고자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셨다.
두 번째 복은,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너무 굶주려 돼지가 남긴 쥐엄열매를 먹으려했던 둘째 아들과 같다. 그들은 그저 아버지 품에 돌아가기만해도 아버지는 영접하신다.
■ 결론
다윗은 우리에게 선택 맡긴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과 여전히 죄 안에 있는 자들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시 36:10-12)
[10]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2]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주약교회 수요예배 시편설교 김광영 목사
아이히만은 우리 모두 안에 있다. 하나님이 나를 벌하지 않으실 것이라 속이며 계속 죄 안에 거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 피하려고 달려갈 것인가? 당신은 어둠안에 머물것인가 아니면 빛 가운데로 나올 것인가? 생명의 빛 가운데로 나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