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 말씀

43th 약속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열왕기하 6장 14-19절

주님의 약속 2019. 7. 1. 14:36



 

Sun 30th Jun 19 주약교회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열왕기하 6장 14-19절  

 

  김광영 목사 주일설교

 

1. : 설화체

 

2. 문맥 : 본문 (왕하6:14-23)


전문맥- 왕하 5: 문둥병든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치유

6:1-7 : 물에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함

6:7-13 : 아람왕의 번뇌 (엘리사가 골칫거리)


후문맥- 왕하 6:24-7:2 : 아람왕 벤하닷의 사마리아 포위와 극심한

기근과 엘리사의 복음

 

3. 문단나누기


문단(14-19) 엘리사를 잡으려다 사로잡힌 아람군대

문단(20-23) 풍성히 대접받고 놓임 받는 아람군대

 

4. 문학적데이타


반복, 비슷 성을 에워쌈(14,15)

(17,18,20)

치리이까(21,22)

기도(17,18)


반대, 대조 


  저의 눈을 열어 보게(17)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18)

치리이까(21) 치지마소서(22)

수종드는자, 사환(15) 주인(23)

치는 것 덕과 물을 먹고 마시게하고 돌려보냄(22)

 

5. 신문기자되기 (7대원칙)

Who 아람왕

그 신복, 마르 병거, 많은 군사

엘리사

이스라엘왕, 수종드는자, 불말, 불병거

When 밤에 그 성을 에워쌈(14) where 도단성 사마리아성

what why

사환이 두려워함 성을 에워싼 아람왕의 군대

엘리사가 기도함 사환의 눈을 열어 불말과 병거를 보게

아람군대의 눈을 어둡게 함

아람군대의 눈을 열게 함

사로잡은 아람군대 대접함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들이 아님

how

아람군대를 대접함 떡과 물을 그 앞에두며 식물을 많이베품

and, then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못함 (23)

 

 

 

8-14절 아람 왕 공격을 막는 엘리사, 엘리사를 잡으러 군대를 보낸 아람 왕

 

그 때에로 시작된다. 그때는 어떤 때인가?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서 병 고침을 받고 간 후를 말한다.

아람왕은 이스라엘과 전쟁하면서 자신의 신하들과 의논했다. 어떤 곳에 진을 치자고 하면, 이스라엘 군대가 딱 그곳에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11절을 보니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리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한다.

불안하다로 번역된 동사는 폭풍이 일다라는 뜻의 동사 싸아르이다. ‘화를 내다’, ‘격분하다이다.

큰 군대와 권력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연약함에 폭풍에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것처럼 곤혹스러워하는 아람 왕. 어떻게 자신이 침입하기로 정한 그곳에 족집게처럼 이스라엘 군대가 막아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들 사이의 밀정, 스파이, 간첩을 색출해 내겠다는 것이다.

12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가장 은밀한 왕의 침실에서 나눈 대화까지도 알 뿐 아니라 그 말을 이스라엘 왕에게 전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한 신복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엘리사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나아만의 병은 아람의 의술이나 신들로 고칠 수 없는 나병이었다. 그렇게 분명하게 이스라엘 여호와의 능력과 그 선지자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13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14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위해 도단성을 밤에 조용히 에워 싸버린다. 단지 엘리사 한 사람을 잡고 성을 에워싸도록 큰 군대가 동원된 것을 보면 아람왕이 엘리사를 얼마나 골칫거리로 여겼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참으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 대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고 전략적으로 숨통을 조여올 것이다. 엘리사의 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적국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가? 세상이 두려워 도피하는 자인가? 세상에 어울려 맞장구치는 자인가?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복음으로 도전하고 있는가?

만일, 세상이 우리를 위험하게 생각하고 괴롭히고 있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증표가 될 수 있다. ‘무릇 그리스도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자는 핍박을 받게되어 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작정하고 찬양하기도 작정하고 전도하기로 작정할 때 사단을 두려워떨고 우리의 예배를 방해할 것이다.


■■ 15-17절 사환에게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한 엘리사

 

밤사이에 아람 군대가 도단 성을 에워싼 사실을 알리없는 엘리사의 사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아람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을 발견한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그런데, 엘리사의 말이 놀랍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엘리사는 어리둥절해 하는 사환을 위해 기도한다.

17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며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군대가 도단성을 두를 정도이니 참으로 많은 군사를 보내었다. 하지만, 하늘이 군대는 산에 가득하여 그 아람군대를 싸고 있다.

우리는 환난을 몰고 오는 대상을 보며 초조해하고 주눅들게 쉽다.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 참으로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도 많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일. 참된 위로와 격려는 현실 너머를 보고, 문제의 이면을 보고, 나의 불가능을 넘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환난을 몰고 오는 대상을 바라보곤 주눅 들곤 한다. 환난의 현상적 실체에 초점을 맞추다면 우리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환난 뒤에 계신 주님의 크심을 바라볼 믿음의 눈을 지닌다면 우리의 마음은 달라질 것이다. 환난 때에 더욱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하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0명의 정탐꾼, 가나안 사람의 기골의 장대함을 보고 자신들이 메뚜기 새끼같다고 정탐보고한다. 하지만, 두 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고서 그들이 우리의 밥이라고 보고한다. 똑같은 지역 똑같은 가나안인을 보았지만, 메뚜기보고서와 밥보고서를 각기 다르게 올린다. 사환의 눈에 엘리사가 아람군대에 포위당했지만, 엘리사 눈에는 아람군대가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에 포위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환난 가운데 무엇을 보고 있는가? 우리의 시선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가? 과연 땅끝까지 창조하신 여호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신 하나님, 주무시지도 졸지도 아니하시며 우리의 머리칼 하나 까지 세고 계시며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주님은 간데 없고, 눈 앞의 빈 통장, 나를 괴롭히는 직장상사나 이웃들, 시들시들한 성적표, 고통을 주는 상처만 보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의 마음을 조여오고 눈물짓게 하고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움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하나님보다 두려운 그 무엇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진정 섬기지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뒤에 불말과 불병거가 있음을 확신하는 자가 왜 두려워 떨겠는가?

이사 4110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혹시 하나님이 안계신가? 그분이 나를 도울 능력이 없는 분인가? 아님 나를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는 분인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능력많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라면 왜 우리가 두려움의 종이 되어야 하는가?

세상의 갑들이 우리를을 취급한다해도, 우리에게는 슈퍼갑이신 하나님이 계신데, 어찌 우리는 탄식하고 있는가?

(8:31-34)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위기의 한 상황에서 두 사람의 두 반응을 보게 된다. 나는 영적으로 둔감하여 두려워 하는 자인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보며 담대한 자인가? 어려움의 크기가 아니라 어려움을 두르시고 계신 하나님의 크심을 보는 믿음의 눈이 생겨지게 하소서, (간구)

기도를 통해 사환의 눈이 열림처럼 우리 주약교회 직분자들 성도들의 눈도 기도 가운데 열려지게 하옵소서.

 

■■■18-19절 눈먼 아람 군대를 사마리아로 인도한 엘리사

 

아람군대는 엘리사를 잡고자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온다.

18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를 그들에게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른다.

 

엘리사는 청년 사환을 위해서는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했고, 아람의 군사들에게는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와 전략에 달린 것이 아니라, ‘보는 능력에 달렸다. 도단성의 엘리사는 불말과 불병거를 보는 눈을 가졌고, 수많은 군대와 말과 병거의 아람군대는 눈이 어두워지매 오합지졸이 되어 분별력을 한순간에 잃어 버렸다.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잡은 게 아니라, 엘리사가 아람군대를 포로로 잡은 꼴이다. 이들은 도단성을 에워싸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성에 엘리사가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왔음에도 엘리사의 말에 넘어간다.

그렇게 도단에서 사마리아에 이른다. 도단성은 사마리아 동북쪽으로 약 18km 떨어진 도단 계곡의 동남쪽에 위치에 있다. (사마리아와 도단의 거리). 더구나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는 급경사가 바람이 많이 불어 험난한 길인데, 그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을 알지 못한채 이끌려 간다. 그 거리를 엘리사 한사람의 인도로 중무장한 군부대와 병거가 인도되었으니 그들이 더듬으면서 가는 길이 진을 다 빼게 했을 것이다.

 

■■■■ 20-23절 아람 군대를 그대로 돌려보낸 엘리사

 

더 놀라운 사건은 바로 사마리아성에서의 일이다.

아람군대는 엘리사를 따라간다. 엘리사는 다시 기도한다.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는지라.

엘리사에게 포로가 된 상황이다.

21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22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원수를 굴복시킨 것은 칼과 무력이 아니었다. 마음을 감동시키는 자비와 사랑이었다.

(25:21-22) [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22]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를 스스로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엘리사, 나는 원수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한 롬 8장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왕처럼 쉽게 보복하려 들고 있지는 않은가? (회개) 사랑의 성숙된 모습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간구)

이번주간 특별히 내가 사랑하고 용서해야할 사람은 누구인가? (실천)

예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이다. 그분이 의를 위하여 고난받으시면서도 참으신 것처럼, 우리도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을 참을 때 하나님 앞에 상급이 있는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에 자신의 무죄와 정당함을 주장하셨다면, 십자가 질 일도 없고, 그 대속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길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의인이심에도 죄인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5:43-48)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세상의 군대만 본 사환과 하나님의 군대를 보는 눈을 가진 엘리사

보복의 기회만 노린 이스라엘 왕과 관용과 사랑의 기회로 선용하는 엘리사

나는 신앙의 어떤 영적 수준에 있는가 반성하며 신앙이 도약하도록 기도하며 몸부림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