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

막 7장 1~13절 '고르반'

주님의 약속 2019. 5. 29. 17:24








    


문맥적 이해

지금까지 예수님 사역은 갈릴리 해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653~56절을 보면 게네사렛에서 주님의 사역이 요약된다.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오는 모습을 본다.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입었다.

 

이제 본 단락에서 다시 예수님의 가르침이 길게 소개된다.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한 적대자들 가운데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서기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앞서 바알세불 논쟁(3:22~30)의 당사자들이다. 또한 머지않아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직면하시게 될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보게 해준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이들과의 논쟁에서 급진적인 선언을 하신후 이방 지역들, 두로, 시돈, 데카폴리스를 방문하시며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을 펼치신다(7:24~8:10). 정결규례와 관련한 교훈이 단지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경계를 너머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도 무너뜨리시는 것을 시사한다.


마가복음 71~13

고르반


 

유대인들의 정결규례 전통

마가는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로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몇몇 서기관들에 앞서 바리새인들을 언급한다. 그들은 갈릴리 지역 바리새인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몇이 더러운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보고서,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한다(2,5). 마가는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의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 부연 설명한다(3~4). 음식 먹기 전 손을 씻는 관습을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규정한다. 사실 율법에서 손 씻는 규정은 제자장들이 제사를 드리는 상황과 연관되어있다(30:18~21, 40:30~32). 그런데 정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은 랍비들의 논의 과정에서 이 규정을 자신들이 음식 먹는 상황에 확대 적용하는 이 관습은 모든 유대인들이 지켰다고 마가는 진술한다.

 

마가는 시장에서돌아왔을 경우에는 몸 전체를 씻고서야 음식을 먹는 관습도 언급하는데(4), 이러한 관습은 시장의 특성상 부정한 사람이나 물건을 접촉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정결을 좀 더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 생겨났을 것으로 보인다. ‘잔과 항아리와 놋그릇과 침대를 씻는전통도 부연한다. 이러한 전통은 부정해진 물건들에 관한 레위기 규례들로부터 유래한 것 같다(11:32~40, 15).

 

바리새인들의 논쟁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5)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먼저 자신들의 전통에 근거하여 제자들을 책잡는 그들의 문제를 이사야 29:13절을 인용하심으로 지적하신다. 예수님 보시기에 그러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치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위선적이다. 정결례에 대한 그들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규칙들을 교훈으로 가르치는과거 이스라엘 백성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따.

이사야 예언의 인용으로 그들의 내면적 문제를 지적하신 예수님. 이제 그들이 그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과 관련해 질책하신다.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붙들고 있다”(8). 이 질책의 핵심의 두 종류의 규례의 근원과 연관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규례는 계명으로서 절대적 권위를 갖지만,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규례는 전통에 불과하여 절대적이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은 붙들고 산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 갖다 붙이고, 그 전통이 계명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싸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주님은 그러한 신념에 찬물을 끼얹으신다. 그들이 사람의 전통과 붙들고 하나님 계명을 버리는 문제의 근원을 지적하신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무시하는구나”(9). 그것이 계명의 울타리가 아니라, 계명을 가로막는 장애물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질타하신다.

 

고르반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20:12, 5:15),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라(21:17)

이 계명들을 무시하는 장로들의 전통으로 고르반 규정을 제시하신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물질에 관하여 고르반(하나님께 예물이 되었다.)’라고 말하기만 하며, 그 물질을 여전히 자신들이 소유하면서도 부모에 대한 물질적 공경의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고르반 규정이부모를 말로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후원 측면에서 모욕하는 것임을 지적하신다. 부모공경의 5계명도 어기고, 부모를 욕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라는 계명까지 어기고 있는 것이 된다.

너희는 너희가 전하여 준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로 만든다’(3)

히브리어 코르반은 예물, 제물 등의 의미를 갖는다. 마가와 마태는 이를 칠십인역에서처럼 도곤’(예물, 선물)로 번역하고 있다. 미쉬나에서 우리는 이 고르반형식구가 실제로는 어떤 소유물을 희생 제물로 드리지 않으면서도 법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 간주하여 그것이 어떤 특정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데 사용하는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모습은 없는가? 교회의 전통이 성경의 메시지와 어긋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카톨릭은 그들의 전통에 성경을 종속시켰다.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말씀만이 우리의 잣대요 그 앞에 우상화된 모든 것은 철저히 깨어져야 우리 삶에 진정한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믿음아아니라 믿음에 대한 권위가 세워져야 한다.

우리 속에 고르반은 없는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물으신다. 말씀의 종이 되어야지 말씀을 종처럼 부리지 말자.


주약교회 새벽설교 김광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