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 말씀

34th 약속 '하나님 앞에서 경건' _ 약 1장 19~27절

주님의 약속 2019. 4. 30. 09:55









 

고전 15:3~7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 12제자, 500여형제에게 보이셨고, 그 후에 야고보에게도 보이셨다.

이 부활의 증인된 야고보이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문안하고 있다. 첫 번째 권면은 여러 가지 시험을 믿음의 시련으로 받아 온전히 이루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이었다. 이제 야고보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고 영원한 생명에 면류관에 참여하게 될 믿음의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고 있다.

더디할 것 vs 속히할 것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속히 할 것은 듣는 것이요, 더디할 것은 말하기와 성내기이다.

우리 삶에 이것이 역전된 모습을 본다. 많은 말들을 분별없이 쏟아내다가 결국에 성내어 말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가린 적은 없는가? 최근이 생각 없이 쏟은 말로 누군가를 아프게 한 일은 없는가?

 

<제자에 대해 어떠한 판단이나 평가의 말도 내리지 않은 스승>

압트의 랍비의 제자인 랍비 나프탈리, 동료학생이 그들의 선생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을 찾고자 요청했다. 반년동안 그의 친구는 매번의 노력이 랍비가 뭔가 말하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나프탈리에 대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동료제자가 나프탈리에게 말했다.

  “당신이 보듯이 선생은 그의 입안에 황금비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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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의 가족이나 형제 혹은 동료나 이웃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지 않는가? 오직 바르게 판단하실 이는 한 분 하나님이신데, 우리도 그 앞에서 판단을 받을 것인데, 너무 쉽게 단죄하고 있지 않는지 되묻게 된다. 우리 입안에도 황금비늘을 물어 보자.

_ Martin Buber <Tales of The Hasidim - Later Master>Abraham Yehoshua Heshel of Apt

 

우리는 두 귀를 주시고, 한 입을 주신 주님의 섭리를 기억하고, 잘 듣는 일 깊이 생각하는 일에 마음의 무게중심을 두도록 해야 한다.

 

<욕심많은 개> 입에 고기덩어리를 물고서 지나가다 다리밑에 강가에 자신의 모습이 빛춘것도 모르고 다른 개가 입에 고기를 물고서 자기를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욕심많은 개는 그 고기덩어리도 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속에 비친 자기도 못 알아보고 물속에 비친 고기를 문 개를 보고 컹컹 소리를 짖었습니다. 그러자 입에 물었던 고기는 물속에 빠졌습니다.그때서야 개는 물속에 비친 개가 자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직한 모습을 대면하게 한다. 쉽게 원망의 말을 내뱉는 것이나 성내는 것은 더디해야 한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내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하셨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입을 막고 귀를 열어야 한다. 원망 나올 즈음에 말씀을 보자. 극동방송을 듣자. 설교테잎을 듣자. 성경을 읽자. 소그룹에서 나누자.

그리고, 모든 더러운 것 넘치는 악은 내어버리고, 능히 너의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에 심겨진다. 그것이 뿌리가 내리고 토양을 뚫고 나와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그것을 깨달아 잘 지켜야 한다.

 

 

2. 버릴 것 vs 받을 것

 

이런 분별력을 통해 실천해야할 구체적인 명령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내버린다는 단어 아포떼메노이는 의복을 벗는다는 것이다. 우리 속에 옷을 벗듯이 내버려야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은 무엇일까?

내 안과 밖 정결하게 거룩하고 진실하게 주님닮는 모습으로 만드소서. 내 삶을..”

우리 속에 근심, 욕심, 불신앙을 내버린 자리에는 비워두어서는 안된다.

ex) 빈 밭에 아무것도 안나는 것이 아니라, 잡초가 우거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야 한다. 그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겐 얼마나 있는가? 너무 바쁘고, 또 너무 지쳐서 영혼을 구원할 그 말씀을 소홀히 한 죄는 없는가? 우리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심기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전문맥 18절에서는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하였다. 본문에서는 성도가 버려야 할 것으로 악과 온유함으로 받아야 할 것으로 말씀이 언급되고 있다.

교회적으로는 큐티학교를 통해 말씀묵상훈련과 나눔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일상에서도 성경을 가까이 하도록 노력하자. 하루 1장 아니 한구절의 말씀일라도 묵상하도록 하자.

 

이 도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제시되는데, 그것은 도를 듣기만하여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지 않고 도를 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도를 듣고 행치 않는자는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떤 것을 곧 잊어 버리는 자이다. 거울은 보고 고치기 위한 것인데, 곧 잊어 버리면 자신을 속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설교만 듣고 성경공부만 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그것을 적용하여 삶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3. 자신을 속이는 자 vs 말씀을 행하는 자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왜 잊어버리겠는가?

여기서 자신의 모습은 뭔가 변화를 요구하는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이다.

기억력이 나빠서인가?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곧 잊어버린다.

 

자신을 속이는 자는 듣기만하는 자이다. 우리가 주일설교를 듣는 것에 신앙생활의 전부라 생각하면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다.

자유롭게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이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4. 헛된 경건 vs 정결한 경건

 

헛된 경건은 자신을 속이는 자이다.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는 자이다.

3:1~3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참 경건은 ,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이다. 정결하고 더러운 없는 것이다. 타인에 대해서는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는 것이다.

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그 몸의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자신에 대해서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세상속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자.

 

경건에는 헛된 경건과 참된 경건이 있는데, 헛된 경건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이다. 예배에 잘 참석하고 기도회도 나오고 종교적 의무는 잘 이행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말을 자제하지 못할 때 그 진가를 잃게된다.

우리 입술을 지키는 것 비방이나 원망의 말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말씀을 들여다보고 있는자가 아니라 실행하는 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기독교인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때 이렇게 대답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존경하는데 교회가 싫다!” 왜인가?

그리스도를 도를 듣고 그 불편한 진실 앞에서 삶을 바꾸지 않고 그저 종교적인 안락함에 안주하는, 삶이 죽어버린 교회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스테인드글라스나 조직신학책에 감금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은 온전히 살아있다. 배고파하고 목말라하고 피를 흘리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담배피우지 않고, 술마시지않고, 그냥 그런것인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를 안다면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을 주신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한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정말로 겁나는 것은 내가 성경을 전혀 모른다는 게 아니라 조금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죄가운데 빠져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 죄로 인한 통곡이 있게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져야할 십자가의 삶이다. 그것은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우리의 자만심을 깨뜨리길 요구한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줄 알고 버리기를 요구받는다.


주약교회 주일예배 김광영 목사 설교

 

참된 경건이 무엇인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관(68:5)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주고 과부의 재판관이 되어줄 때 세상은 과연 성경대로 살아가는 교회에 소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스스로의 경건은 하나님 보시기에 헛되다. 나의 혀를 재갈물려 악한 말, 어리석은 분노를 내버리고, 그 자리에 이것을 채우자, 듣기를 속히하되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넣자. 그 말씀이 내 귀에만 있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않고, 세속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내 곁의 약한 자들을 환난중에 돌아보야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