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th 약속 '자는자여 어찌함이냐?' 요나서 1장 1~7절
본문은 하나님께서 요나가 탄 배가 떠있는 바다에 폭풍을 보내시는 것에서 시작되어 요나가 바다에 던져짐으로 바다의 폭풍이 잠잠해 지는 것으로 끝난다.
1. 하나님께서 폭풍을 보내심 (4절)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바다로 도망친 요나의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묻게됩니다.
하나님은 도망치는 요나에게 어떤 반응을 보내시는가? 4절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폭풍을 보내심으로 요나의 도망길을 차단하신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모든 자연 만물을 다스리신다. 요나간 도망치는 길에 만난 바다의 폭풍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 폭풍을 바다에 던지시매 -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배가 바람과 물결로 거의 파산할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요나에 대한 응답이었다.
우리 삶이 깨어질 정도의 위험을 당한적이 있는가?
고통에는 뜻이 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숨어있다. 마치 소리를 크게 내는 확성기처럼 우리가 평안할 때에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고통이라는 확성기를 들이밀고 우리로 정신차리게 하시는 것이다.
대풍은 하나님의 진노라고 얼핏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묵상하면 니느웨에 요나를 보내사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처럼, 바다에 대풍을 보내사 요나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게된다.
민감한 영성을 지닌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으로 하나님께 묻는 자이다.우리는 우리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향해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뵈옵는가?
2. 폭풍에 대한 이방 선원들의 기도와 행동 (5절) vs 폭풍에 대한 요나의 행동 (5절)
영문도 모르는 큰 폭풍을 항해중에 만난 성원들은 두려움에 빠진다. 그들은 이러한 위기를 직면해 두가지 일을 한다.
먼저 그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신들에게 기도를 했다. 또한, 하나님이 폭풍을 바다에 던지신 것 처럼 그들의 배에 있는 물건을 바다에 던짐으로 배가 파선 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하나님이 보낸 위기 상황에 대해 자신들이 믿는 헛된 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지혜와 노력으로 그것을 이겨보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은 잠에 빠져있다. 요나는 욥바로 내려가서 배로 내려가고 배 밑창으로 내려간 것이다. 요나의 깊은 잠에서 표현되고 있는것처럼 요나의 영적 침체와 무감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사태의 원인제공자 였음에도 이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배 밑창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푹 빠져 깊은 잠에까지 빠진 것이다.
3. 이방인 선장과 선원들이 히브리인 요나에게 던진 질문 (1:6-8)
6절에는 새로운 등장인물인 선장이 나온다. 선장은 요나에게 “일어나 요나의 하나님께 구하라”고 명령한다. 선장이 말한 “구하라”는 단어는 요나에게 처음 명령한 하나님의 “외치라”라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이다. 요나는 일어난다. 배밑창 그 깊은 곳에서 깊은 잠에 빠져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어보고자 했던 그에게 선장이 말한 “일어나”라는 외침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음에 분명하다. 처음 요나를 부르실 때 너는 “일어나” 니느웨로 가라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그곳에 있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선장은 이스라엘사람은 아니지만 경건한 사람이었다. 잠자고 있는 요나를 발견하고 호되게 꾸짖거나 요나의 짐을 바다위로 던져버리라고 강요하지 않고 요나에게 너의 신에게 기도하라고 말한다.
지금 상황은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상황이다. 이방인인 선장과 선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들이 믿는 신들에게라도 기도하려고 하지만 요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불편한 잠을 청하고 있지 않는가? 마치 내일 시험인데도 시험이 없는양 그냥 잠드는 학생처럼, 내일까지 갚아야할 빚이 있는데 대책없이 잠을 청하는 채무자처럼 우리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피해 불편한 잠을 자고 있지는 않는가?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무의식의 세계로 도피해 가고 있었다.
신자인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불신자인 선장이 너의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요청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믿지 않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통해서라도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믿는 부모나 직장 동료들이 이야기 한다.
“넌 교회도 나가면서 기도도 안하냐”고 다그친다.
선원들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비를 뽑으려고 한다. 그들이 제비를 뽑는 이유는 폭풍이 배가 탄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한 신적인 징벌임을 알았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는 제비 뽑는 것을 통해 말씀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배들은 대부분 지중해의 폭풍시기에는 항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나가 탄 배를 예상치 못한 폭풍이 강타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으로 여긴 것이다.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7절). 선원들이 던진 제비는 바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다. 잠언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정확하게 요나에게 그 제비가 떨어졌다.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자리였다.
배안의 온 무리가 요나에게 묻는다. “청컨데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4. 요나의 대답(9절)
9절에서 처음으로 요나가 입을 연다 요나는 먼저 자신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밝힌다. 이것은 선원들이 요나에게 물었던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요나는 하나님을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분”이라고 말한다. 요나는 자신을 이러한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자”라고 말한다.
5.이방인 선원들의 요나에 대한 두 번째 질문 (1:10-11) 과 요나의 두 번째 대답(1:12)
5절에서 선원들은 폭풍 때문에 두려워 했다. 하지만 이제 선원들은 요나의 고백 때문에 두려움이 커졌다. 요나의 고백으로 폭풍이 신의 진노임을 명확히 알게된 것이다.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묻고 있다.
요나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12절)고 말한다. 요나는 아직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이 바다에 던져져 죽더라도 자기시의 불손종은 회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돌이켜서 니느웨는 못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 소속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를 믿는 신앙의 고백을 지닌자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가 이런 부끄러운 상황에서 여서 되겠는가? 우리는 자신을 밝히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믿지 않는 자들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그들의 눈에 드러나 있다. 우리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백성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요나는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에 합당한 삶은 살지를 못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합당한 삶을 보여주며 그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고집은 어떤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보다 이렇게 버티고 있지는 않은가? 요나는 차라리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6. 이방인 선원들의 여호와에 대한 기도(1:13-14)
요나의 고백을 들은 선원들은 화가나서 당장 요나를 바다에 던질 상황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선원들의 태도는 요나의 마음이 굳은 무관심한 태도와는 달리 요나의 생명을 존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이런 상황에 선원들은 하나님께 두 번째 기도를 드린다. 처음의 기도는 두려움 때문에 이방신들에게 드리는 기도였지만, 이제는 요나가 고백한 바 “바다와 육지를 만드신”하나님에게 올바른 기도를 드리고 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않고 다시스로 도망하고 선장이 기도하라고 해도 기도하지 않는데, 요나의 제비뽑기로 그의 고백을 들은 이방인들은 그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라”
7. 폭풍이 멈춤과 이방인 선원들의 구원
이제 요나의 도망침으로 야기된 풍랑은 요나를 바다에 빠뜨림으로 잔잔해 진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뒤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요나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바다밑에서 조차도 피할 수 없는 것을 알게된다. 하나님의 눈을 어떻게 피할 수 있으랴.
바다에서 폭풍사건을 경험한 선원들의 반응이 세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그들은 처음에 바다에 대한 단순한 공포감을 가졌지만 이제 하나님을 경회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라고 할 수 있다.
※ 정곡을 콱 찌르며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며 도망치는 요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솜씨를 본다. 요나의 불순종은 오히려 선원들이 구원을 받게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나님의 요나의 불순종까지도 사용하셔서 선원들을 구원하시는 드라마를 이루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할 때 조차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세상을 구원해 오신 하나님이 우리가 적극 그 명령에 순종하고자 한다면 얼마나 신속하게 풍성하게 복음의 역사를 이루시겠는가?
우리는 이후 3-4장에서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얼마나 엄청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게 보게 된다.
요나처럼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가려고 하는 열심보다 도망가는 요나를 다시 사로잡으셔서 결국 니느웨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열심히 더 크시기에 우리에는 오늘도 희망이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우리는 어느 자리에 있는가? 일어나지도 않고 머뭇거리는가? 가긴 가는데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가?
이제 아예 하나님의 음성에 귀도 틀어막고 배밑창에서 코를 골며 자는 요나처럼 그렇게 잊어버리려고 하는가?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모습까지도 보고 계시며 그런 우리도 사용하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