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4:21-30 하나님 나라의 비유
Sat 16th Mar Day break
1. 등잔대 위의 등불 비유
21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함이 아니냐. 22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등잔대 위의 등불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지칭한다. 비유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감추어 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널리 알리는데 있다.
22절의 주님의 교훈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때로는 박해 중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할 근거로(마 10:26), 때로는 외식에 대한 경고로 사용된다(눅 12:20), 본 절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드러나는데 목적이 있음을 확증한다.
접속사 ‘히나’(~을 하기 위하여)의 반복사용은 비밀을 드러내 보이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얼마나 확실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비유들에서 비밀깨닫기를 갈망하며 귀 기울여 듣는 자만이 그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은 그러한 자를 들을 귀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2. 측정하는 되 비유
24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예수님은 ‘드는 것’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신다.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듣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눅 8:18), ‘너희가 측정하는 그 되로 너희도 측정 받을 것이다’(24절 下)라는 격언은 복음서 저자들에 의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다양한 문맥에서 사용되는데, 본 문맥에서는 예수님의 비유를 잘 들어야 함을 격려하고 있다.
비밀을 얻고 못 얻고는 듣는 자의 태도에 달려 있으며, 뜯는 자의 책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가는 여기서 ‘또 더 받게 될 것이다’는 어구를 부연한다. 듣는자의 좋은 반응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세상적 기준을 훨씬 뛰어 넘는 은혜의 원리다. 이는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 결실의 양이 기대 이상으로 풍성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에 진리를 환영하는 ‘제자들’은 그 비유로 진리를 더욱 확고히 깨닫는다. 진리를 반대하는 ‘밖에 있는 자들’은 그 분의 비유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러나는 진리를 더욱 완강하게 거부하며,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비유는 단순한 하나님 나라 진리 설명이 아니다. 그 메시지를 듣고 충격을 받도록 하고 고민하여 올바른 반응을 하게 한다. 그 도전에 적절히 반응하면 제자들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는 자들은 그 비밀을 소유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3.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 비유
26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마가복음에만 이 비유가 나타난다. 씨가 싹이 나고 이삭이 자라고 열매가 익는 과정은 농부가 인지할 수도 없이 은밀한 방식으로 이루어준다. 하나님 나라가 인간의 노력과 수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의해 이루어져 나가며, 인간은 하나님 나라의 그러한 성장 과정을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앞 선 비유, 씨 뿌리는 자, 등잔대 위의 등불, 측정하는 되의 비유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된 인간의 반응 역시 인간 노력의 결과가 아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마가는 이러한 비유 배열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각각의 중요성과 둘 사이의 긴장성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절대성을 부각한다.
4. 겨자씨 비유
30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종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겨자씨(콕코스 시나페오스)’는 그 크기가 작아서 격언적으로 아주 작은 것을 지칭할 때 자주사용된다. 개수가 750여개가 있어야 겨우 1g이 되는 씨앗이다. 하지만 조건만 좋으면 한철동안 3m까지 자란다. ‘겨자씨’처럼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록 작은 시작과 모든 풀들보다 크게 자라는 놀라운 결과를 대조하고 있다.
비유의 결론부에는 ‘공중의 새들’이 ‘큰 가지’의 ‘그늘 아래’ 깃든다는 그림은 에스겔 31:3~9의 백향목 비유를 반응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백향목은 엄청난 규모로 자라난 앗시리아 제국을 지칭하고, 그 큰 가지들의 그늘 아래 깃드는 새들은 모든 큰 나라들을 지칭한다.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로 하나님 나라는 큰 제국에 빗대시며 이방의 큰 나라들이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 하에 들어오게 될 것임을 보여 주시려 한 것 같다.
예수님은 복음을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가 아닌 변방 속국 이스라엘, 그것도 중심 예루살렘이 아닌 변방 갈릴리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복음은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제국의 수도 로마에까지 퍼져 나갔고, 마침내 온 제국과 그 주변나라들이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 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은 온 세계 거의 모든 민족이 그 영향력 안에 들어와있다.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처럼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고 미약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겨자씨 비유가 보여주듯 대단한 능력으로 성장하고 얼마지 않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5. 비유로 가르치심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사람들이 알아듣는 만큼 비유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것은 파라볼레(수수께끼)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 제자들 또한 이해가 부족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깨닫고자 하는 ‘제자들’에게만큼은 ‘따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다’ 그들은 설명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그 비밀의 원리에 따라 순종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과연 주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얼마나 그 뜻에 귀 기울이려 하는가?